야고보서 강해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29 22:06 조회8,96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야고보서 1: 1>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straw)만도 못한 책으로 혹평한 적이 있습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발견했던 루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신학자들은 물론 목회자들 역시 야고보서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야말로 신앙과 행위, 복음과 율법의 양극성, 혹은 분열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결정적인 서신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입니다.
약 2: 26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실천행위가 영혼이라면 믿음은 몸과 같은 것입니다.
영혼과 몸이 균형잡힌 조화를 이루어 하나될 때 건강한 인격존재가 되듯이, 믿음을 구체적인 삶의 행위를 통하여 증거하는 이들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 5: 6에서 '사랑으로써 역사는 믿음'(faith working through love)을 갈파했듯이, 복음과 율법, 신앙과 행위, 지식과 실천은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합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불완전합니다.
그러면 야고보서는 누가 어떤 사람들 혹은 어떤 공동체에 보낸 서신입니까? 본문 1: 1은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어렴풋한 암시를 줍니다.
1. 야고보서는 주의 젖동생 야고보나 그와 관계된 그룹에 의하여 쓰여진 책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라고 말함으로서 서신을 쓴 주인공이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야고보'――Jakobus, 이스라엘의 족장으로서 12지파의 직계 조상인 '야곱'과 관련된 이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두 넷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마 4: 21)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 3)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의 친동생 야고보와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행 1: 13―14과 고전 15: 5, 7은 12사도와
주 예수님의 아우들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의 젖동생 야고보는 12사도 중에 하나가 결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신약학자들에 따르면 이 두 제자들이 야고보서의 저자일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경이 쓰여지기도 전인 주후 40년대 초에 이미 순교했으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제 3의 인물이 눅 6: 16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하나인 '유다'의 아버지인 이 야고보에 대해서도 역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야고보서의 저자로 예수님의 젖동생인 야고보가 부각됩니다. 아마 오늘날의 신약학계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고 가장 논란이 많은 사람이 주의 친동생 야고보일 것입니다. 라버트 아이젠만(Robert Eisenman)같은 학자는 주의 젖동생 야고보: 초대교회와 사해문서의 비밀을 푸는 열쇠(James the Brother of Jesus: The Key to Unlocking the Secrets of Early Christianity and the Dead Sea Scrolls)라는 1074 페이지의 방대한 책을 썼을 정도입니다.
아이젠만에 따르면 주의 동생 야고보는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구약의 음식에 대한 율법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서 일평생 채식주의자로 산 율법주의자였으며, 초대교회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과 맞먹는 위상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영수로서 이방계 기독교인의 최고 지도자인 바울에 필적하는 경쟁자가 야고보였다는 것입니다.
아이젠만에 의하면 율법적 족쇄로부터 기독교를 가급적 해방시키려 했던 '바울적 이방계 기독교'가 승리함으로서 '율법주의적 유대계 기독교'와 '야고보주의'는 철저히 왜곡되거나 변방으로 밀려나 신약 성경에 단 몇 줄로 처리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주의 동생 야고보가 베드로나 야고보에 맞먹는 초대교회의 매우 중요한 지도자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동생 야고보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불행하게도 오늘의 신약 성경은 극히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합니다.
먼저 막 6: 3와 마 13: 55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친동생――초대 교회 터툴리안과 오늘날 개신교인들 대부분은 야고보와 요셉, 시몬, 유다 등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 다음으로 태어난 마리아와 요셉의 친자식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벌써 2세기 초부터 예수님의 형제들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 아니라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기 전에 태어난 자식들로 보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특히 동방정교회가 주창해 왔으며,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가르치는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도 마리아가 예수님 출생 이후에도 계속해서 동정녀로 남아있었다고 주장합니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의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줍니다.
특히 성경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야고보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막 3: 21, 32-32; 6: 1-4 참조). 오히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다른 친척들과 함께 나사렛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후(고전 15: 7)부터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일약 가장 주목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갈 1: 19).
예루살렘 교회가 창립된 다음 야고보는 이 모교회의 기둥으로서 의장과 대변인으로 활약하게 됩니다(갈 2: 9; 행 12: 17; 15: 13-22; 21: 18). 외경 중에 하나인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승천한 후 "하늘과 땅이 그를 위하여 존재하는 바"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에게 가서 지도를 받아야만 한다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결국 야고보는 주후 60년대 초 대제사장 안나스 2세의 선동에 의하여 돌에 맞아 순교 당했습니다. 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때는 로마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안나스 2세에 의하여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가 야고보――더 정확하게 말해서 '메시아로 불리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James the brother of Jesus who was called the Messiah)――가 유대교의 율법을 어긴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3세기 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야고보가 성전 꼭대기에서 강제로 떨어 뜨려져 죽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주의 젖동생 야고보가 오늘의 야고보서를 과연 기록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입증할 길이 막막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고보서의 율법과 선행에 대한 강조점으로 보건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뒤에도 유대교의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했던 '율법주의자(legalist) 야고보'의 이미지가 언제나 이 서신의 저자로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행 15장과 갈 2장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야고보가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하여 굳이 할례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바울과 일치했다는 사실에서 결코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 15: 13-21의 사도총회――행 15: 22-23은 '사도'와 '장로'와 '온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총회에서 결의된 야고보의 절충안을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부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행 21: 25은 '우리,' 즉 오직 '야고보'와 '장로들'만이 서신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에서 제기된 야고보의 주장이 그가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수용함에 있어서, 레 17-18장의 이방인들에 대한 율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했다는 추측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항상 주의 동생 야고보는 '율법주의자'였다는 꼬리표를 달게 해줍니다.
어쨌든 간에 바울은 사도총회에서의 결의 사항을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한 율법으로부터의 어떤 자유라고 해석했는데 반하여, 안디옥에서는 전혀 엉뚱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갈 2: 11이하에 보면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유대계 기독교인들과 음식에 대한 규례를 지키지 않는 이방계 기독교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식사하는 것을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초대교회의 영수로 알려졌던 베드로조차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 21: 18-25에 보면 주후 58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음을 알리며 바울이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갈 것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와 비슷한 일련의 사료들 역시 야고보가 초대교회에서 율법준수를 고집하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명실상부한 영도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후기전승――특히 pseudo-Clementine 계열의 문서들――은 야고보가 바울의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경멸한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위한 감독들 중의 감독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사에서 '의인'(the just)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야고보가 이 별명을 얻게된 것이 그가 나실인(Nazirite)으로서 일평생 금욕적으로 신앙생활 했다는 사실과 성전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낙타 무릎처럼 굳은살이 배겼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제 야고보서의 저자와 관련된 우리의 결론은 야고보서가 야고보에 의하여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이 야고보서의 친율법적인 유대 경건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야고보서는 틀림없이 야고보와 관련된 유대계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유대교적 전통에 충실하고자 했던 야고보의 이미지를 깊이 숭모했던 제자들 중에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쓰여졌을 것입니다.
2.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누구일까요?
야고보서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예수 전승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기후의 한 전형인 이른 비와 늦은 비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약 5: 7)에서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이 발신장소가 아닌가 추측합니다.
헤게시푸스(Hegesippus)에 따르면 'Desposyni'라고 불리는 예수 가족들의 후손들이――특히 유다의 손자들이――트라얀 시대까지(주후 98―117년) 팔레스타인 교회들을 다스렸다고 기록합니다.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건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원조격인 야고보를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숭앙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고보서가 팔레스타인에 흩어져 있던 어느 교회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고보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흔히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서, 그리고 유다서를 '일반서신'(Catholic Epistles)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바울서신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 서신들의 수신자가 특정개인이나 특정교회로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분명히 어떤 특정 개인이나 가정에 보낸 편지가 아닙니다.
수신자의 특성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1: 1의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는 구절입니다. 야고보서가 희랍어와 70인역 구약 성경(LXX)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로 이 'Diaspora'(흩어져 있는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적어도 그 독자층이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는 용어를 구약 성경에 반하여 해석할 경우 수신자들은 이스라엘 지경 밖에 산재해 있는 유대인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와 기독교인들 스스로도 자신을 '갱신된 새 이스라엘'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위한 베드로 전서도 '흩어진 나그네'(the exiles of the diaspora)에게 쓰여진 서신입니다(벧전 1: 1).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야고보서가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야고보서 그 어느 곳에도 유대인들이 보기에 명백히 이방인들이 저지르는 악들――예를 들면, 우상숭배나 성적 불순성과 같은――을 고쳐야 한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더욱이 '열 두 지파'는 베드로 전서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대적이며 이 사람들은 유대 회당에서 모였습니다(약 2: 2). 결국,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유대교적 뿌리와 유산을 가진 기독교인들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이제 이런 아주 기본적인 전이해(前理解)를 가지고 야고보서의 구절 하나 하나를 음미해보도록 합시다.
<야고보서 1: 1>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straw)만도 못한 책으로 혹평한 적이 있습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발견했던 루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신학자들은 물론 목회자들 역시 야고보서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야말로 신앙과 행위, 복음과 율법의 양극성, 혹은 분열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결정적인 서신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입니다.
약 2: 26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실천행위가 영혼이라면 믿음은 몸과 같은 것입니다.
영혼과 몸이 균형잡힌 조화를 이루어 하나될 때 건강한 인격존재가 되듯이, 믿음을 구체적인 삶의 행위를 통하여 증거하는 이들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 5: 6에서 '사랑으로써 역사는 믿음'(faith working through love)을 갈파했듯이, 복음과 율법, 신앙과 행위, 지식과 실천은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합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불완전합니다.
그러면 야고보서는 누가 어떤 사람들 혹은 어떤 공동체에 보낸 서신입니까? 본문 1: 1은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어렴풋한 암시를 줍니다.
1. 야고보서는 주의 젖동생 야고보나 그와 관계된 그룹에 의하여 쓰여진 책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라고 말함으로서 서신을 쓴 주인공이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야고보'――Jakobus, 이스라엘의 족장으로서 12지파의 직계 조상인 '야곱'과 관련된 이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두 넷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마 4: 21)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 3)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의 친동생 야고보와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행 1: 13―14과 고전 15: 5, 7은 12사도와
주 예수님의 아우들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의 젖동생 야고보는 12사도 중에 하나가 결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신약학자들에 따르면 이 두 제자들이 야고보서의 저자일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경이 쓰여지기도 전인 주후 40년대 초에 이미 순교했으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제 3의 인물이 눅 6: 16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하나인 '유다'의 아버지인 이 야고보에 대해서도 역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야고보서의 저자로 예수님의 젖동생인 야고보가 부각됩니다. 아마 오늘날의 신약학계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고 가장 논란이 많은 사람이 주의 친동생 야고보일 것입니다. 라버트 아이젠만(Robert Eisenman)같은 학자는 주의 젖동생 야고보: 초대교회와 사해문서의 비밀을 푸는 열쇠(James the Brother of Jesus: The Key to Unlocking the Secrets of Early Christianity and the Dead Sea Scrolls)라는 1074 페이지의 방대한 책을 썼을 정도입니다.
아이젠만에 따르면 주의 동생 야고보는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구약의 음식에 대한 율법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서 일평생 채식주의자로 산 율법주의자였으며, 초대교회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 바울과 맞먹는 위상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영수로서 이방계 기독교인의 최고 지도자인 바울에 필적하는 경쟁자가 야고보였다는 것입니다.
아이젠만에 의하면 율법적 족쇄로부터 기독교를 가급적 해방시키려 했던 '바울적 이방계 기독교'가 승리함으로서 '율법주의적 유대계 기독교'와 '야고보주의'는 철저히 왜곡되거나 변방으로 밀려나 신약 성경에 단 몇 줄로 처리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주의 동생 야고보가 베드로나 야고보에 맞먹는 초대교회의 매우 중요한 지도자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의 동생 야고보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불행하게도 오늘의 신약 성경은 극히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합니다.
먼저 막 6: 3와 마 13: 55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친동생――초대 교회 터툴리안과 오늘날 개신교인들 대부분은 야고보와 요셉, 시몬, 유다 등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 다음으로 태어난 마리아와 요셉의 친자식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벌써 2세기 초부터 예수님의 형제들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 아니라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기 전에 태어난 자식들로 보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특히 동방정교회가 주창해 왔으며,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가르치는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도 마리아가 예수님 출생 이후에도 계속해서 동정녀로 남아있었다고 주장합니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의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줍니다.
특히 성경 그 어느 곳을 보아도 야고보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막 3: 21, 32-32; 6: 1-4 참조). 오히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다른 친척들과 함께 나사렛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후(고전 15: 7)부터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일약 가장 주목받는 지도자로 부상했습니다(갈 1: 19).
예루살렘 교회가 창립된 다음 야고보는 이 모교회의 기둥으로서 의장과 대변인으로 활약하게 됩니다(갈 2: 9; 행 12: 17; 15: 13-22; 21: 18). 외경 중에 하나인 도마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활승천한 후 "하늘과 땅이 그를 위하여 존재하는 바"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에게 가서 지도를 받아야만 한다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결국 야고보는 주후 60년대 초 대제사장 안나스 2세의 선동에 의하여 돌에 맞아 순교 당했습니다. 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때는 로마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안나스 2세에 의하여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가 야고보――더 정확하게 말해서 '메시아로 불리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James the brother of Jesus who was called the Messiah)――가 유대교의 율법을 어긴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3세기 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야고보가 성전 꼭대기에서 강제로 떨어 뜨려져 죽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주의 젖동생 야고보가 오늘의 야고보서를 과연 기록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입증할 길이 막막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고보서의 율법과 선행에 대한 강조점으로 보건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뒤에도 유대교의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했던 '율법주의자(legalist) 야고보'의 이미지가 언제나 이 서신의 저자로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행 15장과 갈 2장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야고보가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하여 굳이 할례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바울과 일치했다는 사실에서 결코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 15: 13-21의 사도총회――행 15: 22-23은 '사도'와 '장로'와 '온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총회에서 결의된 야고보의 절충안을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부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행 21: 25은 '우리,' 즉 오직 '야고보'와 '장로들'만이 서신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에서 제기된 야고보의 주장이 그가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수용함에 있어서, 레 17-18장의 이방인들에 대한 율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했다는 추측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항상 주의 동생 야고보는 '율법주의자'였다는 꼬리표를 달게 해줍니다.
어쨌든 간에 바울은 사도총회에서의 결의 사항을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한 율법으로부터의 어떤 자유라고 해석했는데 반하여, 안디옥에서는 전혀 엉뚱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갈 2: 11이하에 보면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유대계 기독교인들과 음식에 대한 규례를 지키지 않는 이방계 기독교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식사하는 것을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초대교회의 영수로 알려졌던 베드로조차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 21: 18-25에 보면 주후 58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음을 알리며 바울이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갈 것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이와 비슷한 일련의 사료들 역시 야고보가 초대교회에서 율법준수를 고집하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명실상부한 영도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후기전승――특히 pseudo-Clementine 계열의 문서들――은 야고보가 바울의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경멸한 유대계 기독교인들을 위한 감독들 중의 감독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사에서 '의인'(the just)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야고보가 이 별명을 얻게된 것이 그가 나실인(Nazirite)으로서 일평생 금욕적으로 신앙생활 했다는 사실과 성전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낙타 무릎처럼 굳은살이 배겼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제 야고보서의 저자와 관련된 우리의 결론은 야고보서가 야고보에 의하여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이 야고보서의 친율법적인 유대 경건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야고보서는 틀림없이 야고보와 관련된 유대계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유대교적 전통에 충실하고자 했던 야고보의 이미지를 깊이 숭모했던 제자들 중에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쓰여졌을 것입니다.
2.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누구일까요?
야고보서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예수 전승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기후의 한 전형인 이른 비와 늦은 비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약 5: 7)에서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이 발신장소가 아닌가 추측합니다.
헤게시푸스(Hegesippus)에 따르면 'Desposyni'라고 불리는 예수 가족들의 후손들이――특히 유다의 손자들이――트라얀 시대까지(주후 98―117년) 팔레스타인 교회들을 다스렸다고 기록합니다.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건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원조격인 야고보를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숭앙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고보서가 팔레스타인에 흩어져 있던 어느 교회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고보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흔히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서, 그리고 유다서를 '일반서신'(Catholic Epistles)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바울서신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 서신들의 수신자가 특정개인이나 특정교회로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분명히 어떤 특정 개인이나 가정에 보낸 편지가 아닙니다.
수신자의 특성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1: 1의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는 구절입니다. 야고보서가 희랍어와 70인역 구약 성경(LXX)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로 이 'Diaspora'(흩어져 있는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적어도 그 독자층이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는 용어를 구약 성경에 반하여 해석할 경우 수신자들은 이스라엘 지경 밖에 산재해 있는 유대인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와 기독교인들 스스로도 자신을 '갱신된 새 이스라엘'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위한 베드로 전서도 '흩어진 나그네'(the exiles of the diaspora)에게 쓰여진 서신입니다(벧전 1: 1).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야고보서가 이방계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야고보서 그 어느 곳에도 유대인들이 보기에 명백히 이방인들이 저지르는 악들――예를 들면, 우상숭배나 성적 불순성과 같은――을 고쳐야 한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더욱이 '열 두 지파'는 베드로 전서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대적이며 이 사람들은 유대 회당에서 모였습니다(약 2: 2). 결국,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유대교적 뿌리와 유산을 가진 기독교인들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이제 이런 아주 기본적인 전이해(前理解)를 가지고 야고보서의 구절 하나 하나를 음미해보도록 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