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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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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09:43 조회3,8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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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2)  




시험이 가져다 주는 유익
<야고보서 1: 2―4>

약 1: 2―27은 도덕적 권고의 요약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2―18과 19―27로 다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전자는 시험의 목적과 과정에 대해서 후자는 언어와 행위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사항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4은 시험의 목적과 유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롬 5: 2―4, 그리고 벧전 1: 6―7과 매우 흡사합니다. 시험을 잘 참아내는 중에 우리의 신앙 인격이 훌륭하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시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은 영어로 'trials,' 혹은 'temptations'입니다. 즉 시련이나 고생, 혹은 유혹을 의미합니다.

먼저 성도는 신앙 생활할 때 밖으로부터 많은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벧전 4: 12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제자,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시련과 핍박을 받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 5: 11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밖으로 전도를 나갈 때 아무런 반대나 도전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마귀의 방해공작도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열심히 전도집회를 할 때 돌이나 몽둥이가 날아 올 때 오히려 "하나님, 저의 전도를 도와주시니 고맙습니다!"하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다음에 성도는 안으로부터 여러 가지 유혹을 받습니다. 'Trials'이 주로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temptations'은 주로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 19)하고 탄식했던 것처럼, 신앙생활 잘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내부의 저항 역시 거셉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의 길은 어떻게 이 내부의 적을 제압하고 승리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아무 문제도 도전도 없이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하는 뱃길이 아닙니다. 종종 밖으로부터 성난 파도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야 합니다. 안으로 인생의 뱃길을 자기 맘대로 돌리려 하는 육신의 선장을 꺾고 영혼의 선장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시험을 싸워 이길 때마다 우리의 인격을 정금과같이 훈련시키시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성도는 시험을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풍지대에 두지 않으시고 거센 폭풍우 한 가운데 두셨으며, 결국 이 시험이 우리의 인격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온실 안의 화초는 조금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햇빛이 따가우면 시들어 죽어버리지만 들에 핀 야생화는 그 어떤 비바람과 타는 햇빛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당하는 시련과 유혹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인내'(endurance, hypomone)라는 덕을 생산해 냅니다.

인내야말로 성도의 고결한 인격 형성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덕입니다. 예수님은 눅 21: 19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롬 2: 7에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고 했습니다. 최후 승리와 영생을 위하여 인내의 미덕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3절에서 야고보가 '너희 믿음의 시련'(the testing of your faith)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특히 주목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너희'라는 소유 대명사는 복수입니다. 그러므로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모두 포함하는 말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믿음을 가진 채 당하는 시련이 우리에게 진실로 유익한 길로 이끕니다. 믿음 없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순전히 죄악 때문에 겪는 시련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입니다.

3.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마침내 우리의 신앙인격이 온전해져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4절 말씀은 영어로 볼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And let endurance produce a perfect product, in order that you might be perfect and complete, lacking in nothing." 안팎으로 가지가지 시험거리를 만나서 이를 극복해 가는 중에 우리의 인내는 점점 더 온전한 것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마침내 온전하고(complete and finished) 성숙한 인격존재가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내심이라는 우리의 행위(deed)는 우리의 온전하고 성숙한 인격(person)을 만들어 냅니다. 행위가 존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엡 4: 13의 말씀이 바로 이와 같은 온전한 상태를 잘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인내로 인하여 온전하고 성숙한 인격을 이룬 사람은 자연스럽게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물질적인 의미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즉 심령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감사하십시오. 그 시험이 여러분에게 인내심을 키워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심이 여러분을 불요불굴의 온전하고도 성숙한 인격자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결국 인내로 다듬어진 여러분의 인격에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심령의 자유와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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