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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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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48 조회3,8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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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21): '최고로 만족스러운 양식'  

 <요 4: 31―34>


 <본문 배경>
 

예수님께서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제자들은 양식을 구하러 동네에 나갔습니다.  드디어 양식을 구해서 돌아와 보니 예수님께서 여인과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 계셨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묻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관습으로 볼 때 남정네가 백주 대낮에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은 불경스러운 일이며 샥킹한 일이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제자들은 여자에게도, 예수님에게도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방 여자가 유대인들이 천대하던 사마리아 여자인 것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제자들의 태도는 놀랍기만 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어렴풋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이 천대받는 여자들까지도 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가 끝났을 때, 제자들이 양식을 구해와서 주님께 드실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 때 주님은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대답을 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누군가가 이미 잡수실 음식을 주님께 드렸는가 하고 추측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주십니다.  34절에 보세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오늘 우리가 초점을 집중해야 할 말씀은 바로 이 34절입니다. 

 34절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 복음이 예수님의 대화를 소개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할 수수깨끼 같은 말씀을 툭 던지십니다.  순전히 영적인 의미를 가지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상대방은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합니다.  이제 대화가 조금 조금씩 진행됨에 따라 문자적인 의미에서 영적인 의미로 대화가 발전됩니다.  이런 대화의 패턴은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대로 '중생'과 관련해서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와 '생수'와 '참된 예배'와 관련해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대화의 패턴이 생명의 양식과 관련해서 본문에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지신 양식은 어떤 양식인가?>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주님만이 알고 있고, 주님만이 만족하는 바 배고프지 않는 양식은 무엇일까요?  이미 강조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양식은 예수님을 보내신 이,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데 주님의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과 주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이고 전적으로 순종하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주님은 자기가 좋아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시는 일을 양식 삼아 하셨던 것입니다.  먹을 양식이 없이는 우리가 한 시도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것을 양식 삼아 하셨을까요?   3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은 무수히 많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희랍어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뜻을 가지는 단어는 두 가지인데 'apostellein'이라는 말과 'pempein'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는 'apostellein'이라는 말은 모두 17번 정도 나오고, 'pempein'이라는 말은 도합 27번 나온다고 합니다.  적어도 44회 이상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표현이 요한 복음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요 5: 36; 17: 4; 10: 18; 6: 38; 8: 29 참조).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우리의 매일 양식으로 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① 마음 속에 평화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배로 비유할 때 이 배 안에는 두 사람의 선장이 끝없이 다투고 있습니다.  육신이라는 선장과 영혼이라는 선장이 싸움을 벌입니다.  두 선장이 싸우는 동안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쪽이 다른 쪽에 순종할 때에만 평화가 찾아옵니다.  문제는 영혼이 육신에 져서 육신이 왕 노릇할 때 우리는 잘못된 파멸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오직 영혼이 육신을 제압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할 때 우리의 목적은 바른 목적이 될 수 있으며 삶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육욕대로 살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큰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에게 찾아 올 것입니다!

 

 ② 행복해집니다.
 사람이 자기 중심적으로 남아 있는 한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과 끝없이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해서 순종하게 될 때 그와 같이 무익한 비교의식이 사라지게 됩니다.일체의 것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불행의 척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서 건배를 할 때 다음과 같이 외친다고 합니다.  "당신이 한 시간 동안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술을 마십시오.  당신이 한 달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하십시오.  당신이 일생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은 친구를 사귀십시오!"  우리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시간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낮잠을 주무세요.  당신이 한 주 동안 행복해지고 싶을 때에는 휴가를 가져 보세요.  당신이 한 달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결혼을 하세요.  당신이 1년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재산을 물려받으세요.  당신이 수 십년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웃을 도와 보세요.  그러나 당신이 평생 동안 행복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보세요!"      

 

 ③ 능력있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마귀에게 패배를 당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까?  자기 뜻과 자기 욕심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라디오에 여러 가지 잡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주파수를 정확하게 맞추어 놓으면 청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순종적인 생활을 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보십시오.  틀림없이 사탄의 세력을 제압하고 능력 있고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결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최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양식이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양식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양식은 먹고 나면 또 다시 배가 고픕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영적 양식만이 우리를 영원히 배고프지 않게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최고의 양식을 풍성히 얻어 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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