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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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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01 조회3,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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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28): '엄청난 주장'  

      <요 5: 19―29>


 예수님께서 38년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쳐 주신 사건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먼저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안식일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왜 이런 일을 행했느냐고 트집을 잡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듯이 당신도 안식일에 일하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증오심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더 상세하게 자신에 대해서 변증하고 계십니다.  이 주장은 너무나 엄청난 주장이기 때문에 그 당시 정통 유대인들이 볼 때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신성모독 죄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가지의 엄청난 주장>
 

 ​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일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성에 대한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친아들로서 하나님을 직접 보셨고,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아시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이 세상에서 대신해서 행하시는 분으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원리를 넘어서 부자일체(父子一體)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위를 걸어다니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주장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본문 23절 후반은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에 있는 미국 대사는 미국 대통령과 정부의 전권을 위임받아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미 대사를 공경치 않는 한국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대통령과 미국 시민들을 공경치 않는 것과도 같다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시민들 전체가 직접 한국에 와 있지 않지만 주한 미 대사를 통하여 미국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국민들은 미국이라는 국가 혹은 정부 혹은 국민과 관련된 일이 있을 때에는 전권을 위임받아서 한국에서 일하는 미 대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이와 같은 대사와 본국 정부간의 긴밀한 관계 그 이상의 관계입니다.  단순히 천국 정부의 전권을 하늘의 대통령 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아서 이 땅위에서 일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였습니다.  주한 미 대사는 겨우 법률적인 의미에서 미 대통령과 정부, 국민을 대신해서 한국에서 일할 뿐 미국 대통령과 그 어떤 혈연적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위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으로 조금 난해하지만 'HOMOOUSIOUS,' 즉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은 '인자'(人子, the Son of Man)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최고의 권세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권세'입니다.   26-7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인자' 개념을 깊이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인자'는 한 마디로 말해서 구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약속된 메시아 개념입니다.  이 개념이 직접 나타나는 곳은 단 7: 1―14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해서 포로 생활을 할 때 쓰여진 책입니다.  이와 같이 공포와 박해가 가득찬 시대 속에서 앞으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희망, 회복의 메시지를 계시로서 들은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단 7: 1―7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린하고 핍박하는 이방 제국들을 짐승의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가 나타납니다(4절).  이 짐승은 바벨론 제국을 상징합니다.  둘째로, 그 입의 잇사이에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이 나타납니다(5절).  이 곰은 페르시아 제국을 상징하며 세 갈빗대는 페르시아에 의해서 정복당한 애굽, 시리아, 바벨론 왕국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 넷을 가지고 있고 네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표범이 나타납니다(6절).  이 표범은 알렉산더 대제가 이끄는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극히 강하고 철 같은 큰 철 이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 가공할만한 괴물 짐승이 나타납니다(7절).  이 짐승은 생물계의 그 어떤 짐승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무서운 세력의 출현을 말합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장차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게 될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다니엘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에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공포와 멸망으로 몰아넣었고 또 앞으로 몰아 넣게 될 제국들을 모두 짐승으로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 어떤 인간미도 찾을 수 없는 야차와 같은 비인간적인 세력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짐승 혹은 괴물 이미지와 달리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모든 제국들의 세력을 꺾게 될 메시아를 '인자,' 즉 인격적인 사람으로서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세주와 심판주로 보내시게 될 약속의 메시아는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인자가 메시아로 나타나서 네 마리의 짐승들을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가져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바로 이와 같이 다니엘서에 약속되어 있어서 장차 모든 짐승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시게 될 인자요 심판주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약속된 메시아, 즉 인자 되신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들은 본문 24절 말씀처럼 영생을 이미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③ 예수님을 믿고 선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순간은 부활과 심판의 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신 32: 39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 능히 건질 자 없도다."  또한 삼상 2: 6 역시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가지 성구는 모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생사(生死)의 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므로 사람을 심판할 권세를 가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듯이 예수님 역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끌어내 부활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십니다.  다시 말해, 부활의 날 곧 심판의 때가 이르게 되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곧 심판과 부활의 날에 29절 말씀처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다 똑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이 땅위에 살 때 예수 잘 믿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영생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정반대로 예수 믿지 않고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결어>
 기독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 고백 위에 기초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자시요, 메시아이시요, 심판주시요, 부활주로서 고백하는 신앙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세를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는 주장은 엄청난 주장입니다.  혁명적 주장입니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는 예수님 시대나 그 이후에나 오늘에나 항상 두 가지 반응이 있어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다고 보면서 예수님을 격렬하게 비난해서 결국은 십자가에 못박는 불신앙의 무리들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겸손하게 받아 들여서 영생을 선물로서 획득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앞에도 두 가지의 길이 똑같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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