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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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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03 조회5,9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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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30): '기적은 작은 것에서부터'  

         <요 6: 1―15>


 <본문 배경 분석>
 본문은 흔히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 전체에 기록된 유일한 기적으로서 유명합니다(마 14: 13-21; 막 6: 35-44; 눅 9: 10-17; 요 6: 1-15).  그만큼 이 기적이 유명하고 중요했기 때문에 4복음서에 모두 실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때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뒤를 따랐던 것은 본문 2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좀 쉬기를 원하셨든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때마침 유대인의 국가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워져 왔던 때였기 때문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유월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하고자 했던 사람들까지 함께 몰렸던 것 같습니다. 

 무리들을 보았을 때 예수님 마음속에 연민의 정이 생겼습니다.  여행길에 굶주리고 피곤에 지친 무리들을 먹이는 일에 신경을 쓰신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빌립이라는 제자에게 시험삼아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저들을 다 먹이지?"(5절).  빌립에 의하면 이 엄청난 무리들을 다만 조금씩이라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그 당시 화폐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기 때문에 이백 데나리온은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꼬박 6개월 동안을 쉬지 않고 일해야지만 벌 수 있는 거금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 안드레, 즉 시몬 베드로의 동생이 등장합니다.  안드레는 어린 아이 하나가 소풍 도시락으로 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 보고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바로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을 다 먹이고서도 남은 조각이 12광주리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 '오병이어 기적'의 줄거리입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세 가지 해석 방법>

 

① 본문에 나타난 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기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그 자체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능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지만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제일 먼저 유혹 받으신 것이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 4: 3-4).  이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심으로 이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따라서 떡과 관련된 기적을 거부하신 주님께서 또 다시 떡과 관련해서 기적을 행하셨겠느냐 하면서 부인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지 이 기적이 문자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믿음의 결단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일 먼저 본문에 있는 그대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보는 문자적인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 해석 방법을 내놓기도 합니다. 

 

② 성만찬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나타나는 '주의 만찬'(the Lord's Supper)이 요한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 해석방법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된 요 6: 52-58에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살과 피, 즉 '성만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조각을 조금 조금씩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이 성만찬은 분급하신 것과 같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바로 성찬을 받았을 때 사람들 마음속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주의 떡과 포도주를 성만찬 예식에서 함께 나눌 때 마음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듯이 5천 명의 무리들 속에도 바로 이와 같은 성만찬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③ 인간의 이기심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심리적 해석 방법이 있습니다.    
 5천 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9 마일 이상 걸어서 예수님 있는 곳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할 때 저들이 과연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하였겠느냐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 성지를 돌아보려는 순례자들은 무언가 먹을 것을 준비해서 다녔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는 적게 혹은 많게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 몰라도 다 먹을 것을 지참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자기가 먹을 것을 내놓지 않고 숨겨두었다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공개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령하셨을 때 비로소 이기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기꺼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예수님의 이타심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기 품안에 자기만 먹으려고 물래 감추어 두었던 음식을 꺼내어서 함께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해석 방법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변화시킨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으로 똘똘 뭉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야말로 물질의 변화보다도 훨씬 더 크고 위대한 변화요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와 세번째 해석 방법은 받아들이기가 썩 명쾌하지 않습니다.  뭔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쨋든 간에 이와 같은 세 가지 해석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오병이어의 영적인 의미를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기적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오천 명을 먹이고 12 광주리의 조각이 남는 기적은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기적이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미천하고 무능하고 힘없고 문벌 없는 자들을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같이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은 위험지역에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도록 만드시고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체의 기적과 역사 하심이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① 오병이어는 안드레의 작은 믿음에서부터 싹이 텄습니다.
 본문에 보면 빌립과 안드레의 태도가 뚜렷이 대비됩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항상 함께 나옵니다(요 1: 43-5; 12: 22).  같은 고향 출신으로서 아마 단짝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어떻게 먹일까 염려하셨을 때 빌립은 완전히 세상적인 계산만 앞세웠습니다.  저 많은 무리들을 조금이라도 먹이려면 노동자 한 사람의 6 개월 임금이나 되는 200 데나리온 정도는 족히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인 믿음보다는 세상적인 걱정과 계산이 앞서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은 없는 것, 부정적인 것을 먼저 보았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안드레는 없는 것, 부정적인 것보다, 있는 것 긍정적인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하나가 도시락으로 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는 사실을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께 보고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안드레의 작은 믿음과 희망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음을 믿으십시오.  절망적이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때 그 희망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② 오병이어는 한 소년의 보잘것없는 도시락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현장에 있었는지 성경은 침묵합니다.  그러나 이 소년이 가졌던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보리떡은 그 당시 유대 지역에서 나온 떡들 가운데 가장 값이 싸고 또 경멸받던 음식이었습니다.  유대 경전 중에 하나인 「미슈나」(Mishnah)에 보면 여자가 간통을 저질렀을 경우 속죄하는 제물을 가져와야만 했는데 바로 보리로 된 가루였습니다.  이것은 보리가 짐승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사실에서 간통한 여자의 죄는 짐승이나 짓는 죄와 같다는 그런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리떡은 그 당시에 가장 가난했던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또한 물고기 역시 보리떡 못지 않게 보잘 것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아마도 소년이 가졌던 물고기가 정어리(sardines) 크기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고기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는 소금으로 저려서 나중에 먹는 것으로서 아주 유명했습니다.  요즈음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직접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정어리와 같이 작은 물고기를 잡으면 소금을 쳐서 썩지 않게 하고 또 약간의 간을 쳐서 여행할 때 먹곤 했습니다. 
 
 이렇게 소년은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을법한 음식을 도시락이라고 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오천 명이나 넘는 무리들 가운데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이 소년이 가진 음식보다 훨씬 더 맛있고 값나가는 음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가진 음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소년만이 콩 한 알도 나누어 먹는다는 심정으로 자기 혼자도 먹기에 빠듯한 음식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란 이와 같이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랑과 양보심을 가질 때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③ 오병이어는 지극히 작은 것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할 때 일어났습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년이 양보한 떡과 물고기를 들고서 하나님께 축사(祝謝)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thanked,' 즉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이것이라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작은 것을 가지고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은 그 작은 것이 커지게 하십니다.  넘치도록 축복해주십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는 기근이 들어서 겨우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었지만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과부는 지극히 적은 것이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현재 있는 것이 보잘것없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 작은 것이 변하여 큰 것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결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본문 14-5절에 보면 그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환호했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 신 18: 15에서 모세가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가 예수님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또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무리들을 떠나 산으로 피신했다는 말씀으로 본문 기사는 끝이 납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본 것은 순전히 외적으로 나타난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외적인 것만 보고 예수님을 '선지자'니 '임금'이니 제멋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무리들이 장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바뀐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들은 오병이어의 물질적이고 외적인 표적만 보았지,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뜻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는 보지 못하고 표적만 보았던 것입니다. 
 
 왕하 4: 42-4에 보면 엘리사 선지가 보리떡 스무 개와 햇곡식으로 100 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잡히는 날에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작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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