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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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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06 조회3,9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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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32): '예수, 하나님 아버지의 도장'  

             요 6: 22―27


 <본문 배경 분석>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날 저녁 큰 풍랑을 만나 놀라 떨던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튿날 일어난 일입니다. 

 바다 건너편에 있던 무리들은 세 가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거기에 배가 한 척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제자들만 따로 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근처 어느곳엔가 계실 것이라고 추단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 예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렸던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곁으로 돌아오시지 않을 것임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디베랴에서 온 배 몇 척이 주님께서 오병이어를 일으키신 곳, 즉 무리들이 모여서 주님을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배를 나누어 타고서는 예수님을 찾아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미 와 계신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배 한 척에는 제자들만 타고 가버나움으로 갔을 텐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곳에 와 계신 것일까요?  지난주에 살펴 본 말씀처럼 주님은 산에 들어가셔서 기도하시다가 풍랑을 만나 쩔쩔 매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바다 위를 걸으셔서 그들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바다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오시게 된 것입니다.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무리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25절을 보세요.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도대체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가운데 어떻게 여기에 계실 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을 보지 못한 무리들로서는 당연히 신기한 노릇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언제 이 곳에 오셨는지 즉답을 하시지 않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전혀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印)치신 자니라."  오늘 우리는 이 두 구절의 말씀에 초점을 모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도장」>
 

① 무리들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주님을 찾았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에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오천 명 이상이나 되는 엄청난 무리들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다함께 배불리 먹고서도 남은 조각이 12 광주리에 가득 차는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이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권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은 곧바로 잊어버리고 먹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야, 예수님께 가면 먹을게 있다더라!  예수님께 나아가면 굶지 않는데!"  온통 먹거리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무리들은 하늘의 것이 아닌 이 세상의 것에 꽉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②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합시다.
 이와 같이 세상의 떡에만 사로잡혀 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충고를 주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사야 선지자는 사 55: 2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썩어 없어질 헛된 것을 위하여 일합니다.  단순히 일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채 미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배고픔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신의 배고픔과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육신의 배고픔은 세상의 썩어질 양식이라도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세상의 음식들은 우리의 육적인 허기를 풀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허기는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배불리 먹고 온갖 만족을 다 누려봐도 이와 같은 영적인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완전합니다.  배는 썩어질 음식으로 넉넉해도 가슴과 영혼은 텅텅 비어 있어, 목마르고 허기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적인 배고픔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야지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후 60년대부터 로마의 사치는 극에 달했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거의 매일 잔치를 벌였습니다.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잔칫상 위에 산더미처럼 매일 넘쳤습니다.  얼마나 맛있는 것을 찾아 헤맸던지 공작 머리로 된 요리, 나이팅게일이라는 새의 혓바닥 요리 등이 파티석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 왔습니다.  심지어 한 상의 음식을 먹고 난 뒤 또 다른 음식상이 차려지는 동안 구역질(emetics)을 해서 토해내는 기묘한 습관이 유행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올 음식을 맛있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이들은 매일 수 천 달러, 수만 달러 어치의 음식을 먹고 마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한없이 목마르고 배고팠습니다.  왜요?  세상의 썩어질 음식만 배가 터져라 먹어댔지 영생하는 생명의 떡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란서의 황제 나폴레옹이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 멀리 하늘 위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나폴레옹은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친구는 눈이 침침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친구에게 묻습니다.  "자네, 저 하늘의 별들이 보이는가?"  "아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네."  나폴레옹이 조용히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자네와 나의 차이점이라네."  한 사람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볼 수 있는데, 다른 친구는 그 똑같은 별을 보지 못하고 어두운 밤하늘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똑같은 세상에 한 평생 똑같이 사는데 어떤 사람은 세상에 썩어질 양식만 쫓다가 갑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비록 몸은 이 세상에 살아도 영원히 썩지 않을 생명의 양식을 구하며 삽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반쪽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땅과 하늘을 동시에 쳐다보며 사는 사람은 온전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印)치신 자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서 살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서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당신 자신이 이 양식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모든 문서가 서명(SIGNATURE)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도장(SEAL), 즉 인으로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주로 반지에다가 도장을 파서 반지 도장을 중요한 문서 위에 찍었습니다.  또 어떤 도장은 도자기 만드는 재료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금속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지든지 간에 도장은 그 사람의 인격과 권위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장이 찍히는 곳마다 진리와 생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도장, 즉 인치신 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로서 언제나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목마른 자들, 영적인 허기에 시달리는 자들에게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진정한 해결책이 되시는 것입니다.

 

<결어>
 유대의 랍비들이 말한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장은 진리이다."  탈무드(Talmud)라는 책을 보면, 어느 날 유대 랍비들이 회당에 모여서 금식기도하고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늘로부터 두루마리 하나가 둥실둥실 내려 왔습니다.  랍비들이 즉시 열어 봤더니 딱 한 글자가 히브리어로 되어 있습니다.  "AMETH."  즉 '진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본 랍비들이 말합니다.  "'AMETH,' 즉 '진리'는 하나님의 도장이다." 

 그런데 이 "AMETH"라는 말은 세 개의 히브리어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글자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aleph,'이며, 중간 글자는 히브리 알파벳의 중간 글자인 'min'으로, 그리고 마지막 글자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맨 마지막 글자인 'tau'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AMETH," 즉 하나님의 진리는 인생의 처음이요, 중간이며, 끝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영적인 허기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도장,' 즉 하나님의 진리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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