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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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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09 조회5,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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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35): '공생(共生): 살을 먹고 피를 마실 때'  

              <요 6: 52―59>


 <본문 배경 분석>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라고 주장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놀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진의를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살을 직접 먹는 것으로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문제 때문에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서로 다투는 무리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본문에서 당신의 살과 피에 대하여 설명을 주고 계십니다.

 본문은 성만찬과 연결시켜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살아 있는 생명의 떡 예수님의 몸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지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살과 피는 사람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인간성(humanity)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살과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에 들어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한다는 뜻이지요. 

 유대인들에게 살을 먹는다는 것은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진 짐승의 살은 제사장이 먹을 수도 있었고, 제사에 참여한 백성들이 축제를 위해서 나누어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율법은 유대인들이 살아 있는 짐승의 피를 마시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레 17: 10-14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지만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도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지만 피를 마셔야만 한다는 주장은 정말로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염두에 두신 것인데 청중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 즉 예수님을 죽여서 인육(人肉)을 먹고 혈식(血食)을 하는 것으로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영생과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고 동참하는 사람들은 영생과 구원을 얻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배에 참석해서 성만찬, 즉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과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에게 영생이 주어질 것입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례전(SACRAMENT), 즉 '성만찬'(The Lord's Supper)과 '세례'(Baptism)만큼 중요한 예식은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평신도들에게 설교할 권한을 부여하는 등, 평신도 사역자들을 적극 활용했지만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례전에 관해서 만큼은 오직 안수 받은 목회자들만이 담당하도록 했고 평신도들이 함부로 터치하지 못하도록 엄금했던 것입니다.  성례전이 그토록 중요한 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인들에게 성만찬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 예배에 참석하는 것까지는 좋은 데, 만일 성만찬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날에는 유대교 회당으로부터 축출 당해야만 했습니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이 고루한 유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예배에 참석해서 성찬을 분급받는 것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혹은 믿기는 믿지만 유대 회당으로부터 쫓겨날까 봐 공개석상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회당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분기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성만찬 예식은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바 기독교적 예배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예수님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53-55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생명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믿으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을 받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된다는 말씀입니다.  살과 피가 생명을 상징하듯이 성찬은 언제나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②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된다.   56-57절을 보십시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은 당신의 살이 참된 양식이요 당신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양식이나 세상의 마시는 음료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남김없이 찢어주신 살과 흘리신 피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공존공생(共存共生)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가 그렇듯이 우리는 주님께 속하고,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 꽉 찬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통하여 주님과 우리는 둘이 하나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사무실에 책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책은 제가 몇 번이고 읽어서 손때가 묻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책들은 그냥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을 뿐 한번도 읽지 않은 책들이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읽어서 줄거리를 기억하고 또 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책들은 이미 제것이 되어서 제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책장에 꽂혀있지만 그 내용이 저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외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제 자신의 인격에 내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읽어서 감동을 받은 책들은 이미 제 안에 있고 저 역시 그 책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제가 한 번도 읽지 않은 채 그냥 서가에만 꽂혀있는 책들은 저하고 아무 상관도 없게 됩니다.  그냥 외적인 대상물로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꼭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 어떤 인격적인 접촉도 없이 그냥 하늘에 계신 구세주로만 알고 있는 한 그 분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인격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감동시켜주시고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실 때에는 다릅니다.  그 분은 이미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여서 예수님과 우리가 일체가 될 수 있는 통로가 성만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면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고 예수님은 우리를 품어주시게 될 것입니다.  공존공생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결어>
 예수님은 58절에서 생명의 떡이신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비교하고 계십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먹고서도 죽었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는 떡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 55: 1은 말씀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생명의 떡과 포도주가 되신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성만찬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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