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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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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25 조회4,0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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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38):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반응'  

          <요 7: 10―24; 37―44>


 <본문 배경 분석>
 지난주에 살펴 본 것처럼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출세를 하려면 갈릴리에 계셔서는 안되고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로 가시라고 권했습니다.  때마침 유대 장정이면 누구나 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 하는 초막절이 가까워져 왔기 때문에 시기상으로도 너무 좋지 않으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생들이 믿음 없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 이유인즉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해서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동생들이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에 당신도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올라가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보여줍니다.  지난주에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세상 사람들의 '예수관(觀)'을 눈여겨볼 차례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유대인들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유대인들'이라고 할 때 거의 틀림없이 예수님께 적대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께 악을 끼치기 위해서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   (제사장들은 거의 다 '사두개인들'로 이루어졌음을 주목하십시오.) 

 이들은 모두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으로서 자타가 공인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적어도 종교적인 계율과 경건성에 있어서는 단연 자기들이 최고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조그만 틀을 더 중요시했고 더 사랑했습니다. 

 아주 쉬운 비유로 말한다면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때 망원경을 사용합니다.  그들의 연구 대상은 밤하늘의 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별보다는 자기들이 만들어 낸 망원경이나 천체 관찰기구들만 자랑하고 거기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른바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이나 율법 준수의 방법이 모두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만들어 낸 율법적인 편협한 틀들을 더 애지중지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 정부와 죽이 맞아서 아주 안락하고 사치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메시아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메시아의 도래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향유해온 기득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어쨌든 간에 바로 이 '유대인들,' 즉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 나중에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주역들이 됩니다. 

 두 번째로 '무리들'이 나옵니다.  요한 복음에서 '무리들'은 언제나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예수님에 대하여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논쟁도 벌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참 하나님의 아들, 진정한 메시아로서는 영접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반신반의하면서 주님 곁을 맴돌았던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처음에는 흥미위주로 예수님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적극 고백하는 제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이 무리들 가운데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님에 대한 세 부류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반응>
 

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혹은 서기관들과 같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룹이라고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을 찾았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께 시비를 걸거나 잡아죽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것은 12-13절에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말 저런 말을 수군거리기만 할 뿐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한 이유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에서 잘 입증됩니다.  이들 유대인들은 종교 정치 사회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밉보이면 타격이 옵니다.  결국 예수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는 사실이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게 하는 일이라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큰 반감을 가졌는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본문 14-19절을 보십시오.  명절, 즉 초막절 중간쯤 되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르침이 정확하고 깊고 넓은지 유대인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했습니다.  15절을 보세요.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교육이라곤 전혀 받지 못한 예수님이 너무나 유창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가르치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명한 랍비학교도 가지 못하셨고 공식적인 학교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 즉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이 누구입니까?  오늘로 치면 서울 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대학을 나온 수재들이요 지성인들요 최고 엘리트들입니다.  그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초등학교 근처도 가지 못했던 예수님께서 그토록 심오한 강의를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안됩니다.  특히 학력으로 한 사람의 진가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고, 학력보다는 실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셨고 책 한 권 남기지 않으셨지만 수천 수만의 석학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연구하고 수천 수만 권의 책을 써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학력보다 실력, 즉 '진실한 삶의 힘'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습니까?          

 어쨌든 간에 학교도 안나온 주제에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빈정거리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중요한 대답을 주십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은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스스로 인간적인 것을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을 구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자는 언제나 진리를 말하며 그 속에 불의함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빈정거리는 유대인들이 들으라고 한 마디 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  무슨 뜻입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바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인간 예수님 자신의 말인지 금방 알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무학(無學)의 예수님이 인간적으로 지어낸 말인지 쉽게 분간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애당초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가방끈, 즉 교육 배경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② 예수님을 '좋은 사람'이라 혹은 '선지자'라 수군거리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을 비롯해서 공관복음서에서 '무리들'은 매우 모호한 집단입니다.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다가 또 어떤 때는 예수님을 매몰차게 버리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폭도로 변하기까지 하는 변덕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평판을 놓고 수군거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수군거린다'는 말은 희랍어로 'gongysmos'인데 '불평한다'(complain), 혹은 '중얼거린다'(mutter, murmur)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은 '불평한다'고 번역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13절과 관련해서 볼 때 무리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예수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렸다는 번역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이라는 모호한 집단은 그 성격상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을 내포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견해 역시 일률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사람'(good man)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반대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좋은 태도이지만 결코 온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사람, 혹은 종교적인 천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은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그 이상이다."--"I know men, and Jesus Christ is more than a man."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이시지만 인간 그 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19-24절을 보면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로 혹평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갑자기 모세의 율법을 거론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 나를 죽이려 하느냐."  모세의 율법은 모두 예수님, 즉 메시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까닭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모세의 율법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한다는 사실을 고발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여기서의 무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께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 합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신나간 분이요 귀신들렸다는 것입니다.  실로 유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은 미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깨는 사람이요, 죄인의 친구요, 먹기를 탐하는 자요, 모든 정통 종교를 뿌리째 흔드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미친 사람입니다.  정복의 왕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당신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하시지 않고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기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상식이나 세상적인 이치로 볼 때 도저히 맨 정신이 아닌 일만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본문 40절에 보면 예수님을 '선지자'로 본 사람들이 또한 무리들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38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는 무리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성경에 약속한 선지자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는 사실에서 선지자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지자 그 이상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자기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는다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의 'conduit,' 즉 '도관'(導管)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그 근본이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100%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③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1절에 보면 일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간주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가장 정확한 반응이요, 구원받을만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도, 미친 자도, 좋은 사람도, 선지자도, 종교적 영웅이나 천재도 아니고 오직 메시아, 즉 그리스도, 구세주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결어>
 무리들 가운데 일부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되기 위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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