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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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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40 조회4,8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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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47):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요 8: 46-59>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가지 주장에 대한 논쟁으로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귀신들렸다는 주장>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줄기차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 47절에서 따끔하게 꾸짖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오직 자기들만이 하나님께 속한다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니요?  그들이 듣기에 이것은 굉장히 큰 인격적 모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48절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혹은 '귀신이 들린 사람'으로서 비난합니다.  먼저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왕하 17: 24-41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 원주민과 이방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민족이었습니다.  순수혈통을 유난히 강조했던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사마리아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단들이요 이교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으로서 비난한 것은 사마리아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은 막 3: 22에서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바알세불이 지폈다 혹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비난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계십니까? 

 49-51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당연히 예수님은 당신이 귀신들렸다는 주장을 부인하십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시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무시한다고 반박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수님을 무시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구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정반대로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수치와 고난만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실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하셨습니다.  영광을 구하고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는 주장>
 

 결국 51절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죽지 않는다?  불사조(不死鳥)라도 된다는 말인가? 
 
 유대인들은 이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때가 되면 죽음을 보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창조의 질서입니다.  특히 슥 1: 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등 이스라엘의 모든 조상들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와 에레미야 등등의 선지자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는다니?  유대인들이 깜짝 놀라서 예수님께 크게 시비를 겁니다.  52-5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아브라함도 죽었고 기라성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는데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아브라함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냐?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문에 대해서 54-55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의 대답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먼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영광스럽게 만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당신의 영광을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지키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요점이 영생불멸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 예수님께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신 것은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죽음을 피하고 신체적으로 불로영생(不老永生)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십자가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높이셨듯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죽음이 더 이상 절대적 권위를 주장할 수 없는 그런 영적인 상태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이 육체적인 죽음이 더 이상 맹위를 떨칠 수 없는 영생의 삶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실천해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육체의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을 얻게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는 주장>   
 이렇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되는 영생을 매우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예수님은 56절에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신체적으로 누가 나이가 더 많습니까?  아브라함입니까?  예수님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신체적으로 훨씬 연장자인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즐거워했다니, 이것은 육적인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한 것입니다.  성육신 사건을 통하여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아직 살아있었을 때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와 메시아의 도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장차 오게 될 이스라엘의 구세주, 메시아에 대한 영적인 비전을 미리 보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영적인 해석을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보았던 메시아 환상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57절을 보세요.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민 4: 3을 보면 레위인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50세였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나이가 젊어서 은퇴할 때도 아닌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주장하느냐?  이것은 정말 미친 이야기다. 

 유대인들은 영적인 문제를 영적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문제를 영적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비교한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비교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58절에서 놀라운 대답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Before Abraham was, I am."  여기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Before Abraham was, I was."--라고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육체적인 선재설(先在設)이 아니라 무시간적인 영적 선재설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요 1: 1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이 세상에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이 세상에 무시간적으로 계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는 예수님의 주장은 당신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예수님 역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 영원토록 동일하게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보다 먼저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주장을 들은 유대인들이 격노합니다.  59절을 보세요.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몰래 숨어 피할 정도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조상 아브라함보다도 더 높게 당신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어>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이 아닙니다.  귀신들린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도 계셨던 것처럼 예수님 역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과 근본 동체(同體)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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