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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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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58 조회4,3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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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50): '누가 소경인가?'  

           <요 9: 35-41>

 

 <序: 소경과 예수님의 만남>
 요 9장은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가 실로암 못에 가서 치유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경이 나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왜 소경이 되었느냐 하는 원인론에서부터 치유 후에 소경과 소경의 부모, 바리새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논쟁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 오늘 결론 부분 역시 단순히 육체의 병이 나았다는 사실보다 영적인 눈을 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소경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말 잘하는 바리새인들도 소경의 재치있는 말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논쟁에 진 바리새인들이 화를 내면서 소경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이제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난 소경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셨습니다.  이 소경은 자기의 병이 나았지만 이 병을 낫게 해주신 예수님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뜬 후 최초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本: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시는 주님>
 예수님은 소경에게 먼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인자'는 구약의 다니엘서에 나오는 개념으로서(단 7: 13; 8: 17 참조) 하나님의 아들, 혹은 메시아와 같은 뜻으로 보면 됩니다. 

 36절에 보면 이 질문을 받은 소경이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하면서 믿음의 태도를 보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바로 그 인자인 것을 분명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자가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지만 제가 믿고 싶습니다." 하면서 믿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에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시면서 당신이 바로 그 메시아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예상대로 38절에 보면 소경이 넙죽 절을 하면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알자 즉각 믿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소경은 육신의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전인(全人) 치유를 받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결론 중의 결론은 39-41에 나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요한이 즐겨 주장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접하는 사람들마다 음으로 양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저주받은 사람들이요, 예수님에게서 하늘의 귀한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님은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처럼 앞 못보는 사람들을 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소경이었지만 영적으로는 눈뜬 사람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잘난 척 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육체적으로 소경이 아니지만 영적으로 소경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이 영적으로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셔서 소경이 되게 하십니다. 

 자기의 소경됨을 깨닫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 더 알기 원하는 사람들, 한 마디로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더 많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게 하십니다.  반면에 자기 생각에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거나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눈먼 소경이요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는 눈을 떠서 보게 되었지만, 바리새인들처럼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다 본다고 교만과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야말로 영적인 소경으로 눈이 감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가지면 가질수록 심판과 저주도 더 커진다는 진리입니다.  40절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우리도 소경인가?" 하면서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41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소경처럼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다면 죄가 없겠지만 두 눈을 다 뜨고 땅과 하늘의 모든 일들을 다 보고 안다고 하면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바로 너희들이야말로 죄인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모르고 짓는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 알고서도 짓는 죄는 무섭고 심판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이 차라리 소경처럼 무지 한가운데 있었더라면 그들이 짓는 죄는 용서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주장했습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있어서도 제일이라고 자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은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보고 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진짜 소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結: 알면 알수록 신비한 분이여>
 요 9장에 나오는 소경은 그 믿음이 점차 발전해 나간 사람입니다.  딤전 4: 15에 보면 바울은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고 성숙하는 믿음이 되어야지 줄어들고 퇴보하는 믿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일 먼저 요 9: 11에 보면, 이 소경이 실로암 못에서 두 눈을 고침 받은 뒤 예수님을 "그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좋은 사람이요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그 이상의 분이십니다.

 둘째로, 요 9: 17에 보면 소경이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확실히 그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은 선지자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에레미야나 이사야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 그 이상의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요 9: 35-38에 보면 이 소경은 예수님을 "인자"로, 즉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서 믿고 고백했습니다.  제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인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소경의 믿음이 자꾸만 나아졌습니다.  성숙해졌습니다.  올바른 궤도를 찾아 나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위대해져서 우리의 필설로 다 찬양할 수 없는 분이 되십니다.  사람들은 자꾸 알면 알수록 약점이 드러나고 신비감이 사라지는데 예수님은 정반대입니다.  알면 알수록 더 아름답고 고상하고 더 신비해져 갈 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점점 더 알아서 믿음이 자라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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