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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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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09:48 조회4,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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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7)  

성내지 말라
<야고보서 1: 19―21>


야고보서 1장의 주요한 주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구할 때 아낌없이 주십니다. 이 좋은 것들 중에 최고는 지혜입니다. 인간이 시험을 받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잘못된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려면 세 가지를 잘 컨트롤해야만 한다고 가르칩니다.

1. 듣는데 신속해야――quick to listen――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개의 귀를 주셨습니다. 입은 하나인데 귀는 왜 둘일까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남이 하는 말을 잘 귀담아 듣고 말은 적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열심히 구하라고 야고보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생활의 으뜸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점점 성숙해 갈수록, 우리의 믿음이 점점 더 깊어 갈수록 남의 말을 열심히 잘 들어 주게 됩니다. 그것이 지혜의 길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 말하는데 더디어야――slow to speak――합니다. 언어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말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과 믿음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왜 실수합니까?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말을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속에 있는 말을 빨리 내뱉기 때문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약속한 것은 틀림없이 지키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약속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으십니까?" "나는 약속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말을 적게 할수록 믿음직스럽게 됩니다. 말하기 전에 꼭 세 번 이상을 생각한 후에 발설하라는 충고가 있습니다. 말을 아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잠언 29: 20에 말씀합니다.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3. 성내는 데 더디어야――slow to anger――합니다. 사람이 성을 내는 것은 듣는 데 신속하지 못하고 말하는데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내는 경우의 대부분은 언어를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욕심이 충동질을 하기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말을 쉽게 쏟아내고 결국 욕심 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성을 내게 됩니다.

잠언 15: 1에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6: 32에서도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에베소서 4: 31에서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분노는 백해무익한 것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러면 왜 분노가 좋지 않은 것일까요? 본문 20절에 대답합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냄'(orge)과 '하나님의 의'(dikaiosyne tou theou)를 대조해보십시오. 인간의 성냄과 하나님의 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냄이 의로우신 재판관 되신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왜? 사람이 분을 품게 되는 것은 대부분 일그러진 욕망이 좌절됨으로 천천히 듣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하는 일에 빠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내는 것은 시험과 욕심과 죄와 성급하게 말하는 것 등이 종합되어 분출되는 결과이기 때문에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21절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지침을 줍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Therefore rid yourselves of all sordidness and rank growth of wickedness, and welcome with meekness the implanted word that has the power to save your souls." 여기서 '온유함'(prautes)은 '성냄'(orge)과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온유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온유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바 '마음에 심긴 도'(emphytos logos)를 받아야만 합니다. 여기서 '마음에 심긴 도'는 우리가 예수를 영접함으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구원의 선물, 혹은 은총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빨리 듣고, 천천히 말하며, 분노를 피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인간의 성냄은 하나님의 의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냄은 언제나 쾌락과 소유와 권력을 탐하는 욕심과 짝이 맞아, 그 욕심이 좌절될 때 성냄과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욕심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언어를 절제할 수 있으며 성냄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진실로 지혜로운 삶으로 이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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