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사무엘하 강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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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5:12 조회3,9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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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5): '시간이 가면 차이가 납니다' <삼하 3: 1-5>

 

 

 

2004년 8월 25일(수) 새벽기도회 설교

 


 삼하 2장 8절부터 4장 12절까지는 다윗가와 사울가의 계속되는 대립과 갈등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울이 세상을 떠났어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한 사울의 잔존 세력은 오랫동안 다윗왕가를 괴롭혔습니다.

 

 사울의 잔여 세력을 정치적으로 보지 않고 영적으로 볼 경우 이것은 불신앙의 세력입니다.

불신앙의 세력은 그 뿌리가 깊고 영향력도 오래갑니다.

우상 숭배를 오래했던 가정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 영적인 영향력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본문 분석



 ① 다윗가는 점점 더 강하여져 갔고 사울가는 점점 더 약해져 갔습니다.

 

  
 본문 1절을 보세요.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 사울의 사후에 다윗이 곧바로 천하의 대권을 잡은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기가 속한 유다 지파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을 뿐입니다.

사울가인 베냐민 지파를 비롯한 나머지 11개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통일 왕이 되는 것은 여전히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두 가문 사이에 내란은 골이 깊었고 기간도 길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분명한 차이도 드러났습니다.

 다윗가는 점점 강성해져만 갔는데 이스보셋을 중심으로 한 사울가는 점점 더 쇠약해져 갔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주목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기본 신앙차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다음에 지도력의 차이도 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초기 왕권시대에 다윗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으며 하나님을 신앙하는 마음으로 국사를 돌보며 원수를 징치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이스보셋은 아버지 사울과 형제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충분한 반성없이 왕이 되었습니다.

 

 

 나이 40세에 왕좌에 오른 이스보셋(삼하 2: 10)은 스스로의 실력으로 대권을 잡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군장이었던 아브넬의 옹위를 받아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삼하 2: 8).

그러므로 모든 실권은 아브넬에게 집중된 채 이스보셋은 한갓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일 읽을 말씀에 나타나겠지만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아버지 사울의 첩과 통간한 사실을 알고서도 제대로 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세력을 두려워하는 실권없는 왕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보셋은 다윗에 비해 신앙인격도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부하들을 확고히 장악하고 통솔해나가는 지도력에 있어서도 뒤졌습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다윗가는 점점 융성해졌고 사울가는 점점 미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② 다윗가의 강성함은 자손의 번성함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본문 2-5절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하던 7년 반 동안 낳은 여섯 아들의 명단과 여러 첩들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시 127: 4-5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다윗가가 날로 융성해지고 있다는 것은 전쟁의 와중에도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입증됩니다.

 

 다윗 시대는 우리와 같은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아닌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였기에 수많은 아내와 첩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윤리적인 눈으로 다윗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진리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결혼질서는 언제나 일부일처제입니다(창 2: 24참조). 이에 반하여 죄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일부다처제를 지향합니다.

 

 

 

 다윗은 그 후에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천도하여 13명의 아들을 더 낳았습니다.

 40년 가까이 되는 치세 중에 무려 19명의 왕자들을 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시대가 일부다처제 중심이었다고 할지언정 인간이 세운 제도와 세상풍조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사무엘하의 여러 장들을 읽을 때 드러나겠지만 다윗은 수많은 아내와 자식들로 인해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다윗 역시 자식들로 인해 파란만장한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삼하 13: 1-39; 15: 1-18: 33; 왕상 1: 5; 2: 24, 25).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인간의 풍조는 언젠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간이 말해줍니다.

당장 모든 것이 그럴듯해 보이고 만사형통(萬事亨通)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고 잘 안 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는지 밝히 드러납니다.

전쟁이 오래갔지만 다윗가는 점점 융성해져갔습니다. 반면에 사울가는 점점 약해졌습니다.

한 쪽 가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또 다른 가문은 하남의 영광이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행전 5장에 보면 아무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나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복음을 힘써 전하다가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공의회에 불려가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점 두려움 없이 복음 전파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베드로와 사도들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격분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을 무마하면서 가말리엘이라는 교법사(敎法師)가 나섰습니다. 가말리엘의 설득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 전에  '드다'라는 사람이 일어나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해서 약 4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따르던 사람이 순식간에 흩어졌습니다.

 

 그 후에 인구 조사할 때 갈릴리 사람 유다가 또 일어나 백성들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그 무리들 역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두 가지 역사적인 예를 든 가말리엘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행 5: 38-39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옳습니다. 어떤 일이 사람에게로부터 온 것이면 지금 당장 아무리 흥(興)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아무리 핍박을 가하고 죽이고 말살하려고 해도 그것을 없앨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기를 쓰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기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의 잔존 세력인 이스보셋 왕가가 다윗왕가를 크게 위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가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로마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기독교를 압살하려고 했지만 기독교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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