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바이블시론- 매장이냐? 화장이냐? (2012.11.2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22 조회2,477회 댓글0건

본문

“아빠가 죽거들랑 양지바른 동산에 묻어주면 좋겠다. 화장(火葬)을 하면 너무 뜨거울 것 같아.”



장례 방식에 대해 딸과 나눈 농담 아닌 농담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화장보다는 매장을 선호했다.

성경의 약속대로 죽은 후 부활한다면 시신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드느니, 물론 언젠가는 흙으로 소멸되겠지만 땅에 묻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시신은 결국 티끌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매장 쪽이 좀더 인간의 육체를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평소 막연한 신념을 마구 뒤흔든 뉴스를 접했다.



육신은 한줌 재로 돌아갈 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에 따르면 5년 뒤 화장률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근래 화장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는 누구나 감지하고 있었지만 국가기관이 이런 발표를 했을 때 체감도는 훨씬 큰 법이다.

화장은 이제 개인의 종교나 신념을 떠나 이 나라 국민인 이상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듯 하다.

좁은 땅덩어리에 매장을 지속하면 국토의 상당 부분이 분묘로 잠식될 것이 뻔하고 자연환경도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매년 여의도만한 면적이 묘지로 잠식되고 있고, 국민 1인당 주택 면적은 6평에도 못 미치는데 분묘 1기의 평균 면적이 15평에 이른다는 조사보고를 접하는 순간 매장에 대한 주장은 절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묘지를 매입하고 유지·관리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신구약 모두를 읽어보면 유대 기독교의 장례문화는 매장이 지배적이다. 유대인들은 시신을 땅이나 돌무덤에 매장했다.

율법을 어긴 중죄인에게 화형을 더러 명한 적이 있지만(레 20:14·21:9, 수 7:25)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다윗 등은 모두 매장됐다. 세례요한, 나사로, 특히 예수님도 매장됐다.

이런 매장 풍속은 부활신앙과 연계되어 초대교회에 그대로 이어졌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적 장례 방식으로 뚜렷이 각인되어 왔다.



부활 후 전혀 다른 영체로 변모



 기독교가 매장을 선호하는 근거가 부활신앙 때문이라면 화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수님의 부활이 예시하듯 장차 부활할 몸은 현재의 몸과 전혀 다른 신령한 상태로 변형될 것이므로 장사 방법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씨앗과 열매의 비유를 통해 지금의 몸과 부활체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설명한다(35∼49절).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있겠지만 전혀 다른 영체로 변한다는 점에서는 질적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매장이든 화장이든 어차피 육신은 한줌의 재로 돌아갈 뿐이므로

부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화장을 했다고 해서 부활체로 변형되는 데 절대 불리하지 않다.



성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한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객지에서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어거스틴의 형은 고향에 묻기를 원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타관객지에 묻히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에게는 먼 곳이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세상 끝날에 나를 부활시킬 장소가 어디인줄 모를까 두려워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 적어도 확고한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어디에, 어떻게 장사지낼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이든 부활체로 변형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매장 쪽을 선호하기에 무연고 묘지나 공동묘지를 정비해 공간만 확보된다면 그저 내 한몸 누일 수 있을 정도의 묘지에 묻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금번 정부의 발표로 보건대 이런 소원은 아무래도 물 건너간 것 같다. 나 역시 하릴없이 화장을 준비해야 하리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