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바이블시론- 압제와 혼란 사이에서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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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24 조회2,3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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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8장은 왕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의 폐해를 낱낱이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왕이 백성을 압제한다는 말이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왕이 독단에 빠져 폭정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에 도사리고 있는 ‘압제(tyranny)’라는 근본 사회악이 있다.

그런가 하면 사사기 21장 25절은 또 다른 사회악 ‘혼란(anarchy)’을 경계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성경은 이와 같이 이미 2500여년 전에 모든 정치가 빠질 수 있는 두 가지 근본악, 압제와 혼란을 경고한다.

압제를 일삼는 지도자는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공평과 정의를 무시할 수 있다.

반대로 공평과 정의에 집착하는 지도자는 안정과 질서를 잃고, 심지어 무정부 상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지도자는 두 가지 근본악 경계를



 그렇다면 좋은 지도자는 독재하지 않으면서 안정과 질서를 지켜내고, 혼란하지 않으면서 공평과 정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다.

정의와 안정을 다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지도자들이 압제와 혼란 사이에서 오락가락 줄타기를 해온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대선이 끝났다. 이제 박근혜 당선인은 낙선한 문재인 후보와 그 지지층을 위로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이번 대선은 여성 대 남성의 성대결 의미뿐만 아니라 뚜렷한 이념 대결로도 눈길을 모았다. 박 후보 쪽으로는 보수우파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반대로 문 후보 진영으로는 진보좌파 세력들이 합세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대결양상을 보인 이번 대선은 놀랍게도 ‘박정희’ 대 ‘노무현’의 그림자 대결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보혁 대결이야말로 ‘압제’와 ‘혼란’ 혹은 ‘안정’과 ‘정의’의 대결구도로 볼 수 있다.

이제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박 당선인은 안정과 질서 속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정의와 분배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지역격차와 빈부격차를 줄이고 경제적 불평등도 해소하고 분배와 복지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윤리학자 윌리엄 메이(William F May)에 따르면 세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

예루살렘형의 카리스마 지도자와 스파르타형의 군사독재 지도자, 그리고 아테네형의 설득하는 민주 지도자가 있다.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해서 영웅군주로서의 탁월한 매력과 카리스마로 통치했던 다윗, 명령과 복종이라는 군사적 위계질서로 국가를 통제했던 스파르타식 전제정치, 그리고 시장에서 민의를 듣고

시민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연설을 통한 설득을 주 무기로 한 아테네의 민주정치다.



설득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메이는 당연히 최고의 리더십은 국민을 설득하는 민주정치라고 봤다. 그런데 이 설득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가르치는 설득법이다.

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설득할 수 있는 자질은 오직 신뢰할 만한 인격과 도덕성에서 나온다.

그리스가 국가부도 상태에 빠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현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나머지 무책임하게 남발한 분배와 복지과잉 정책에 있다.



이제 새 대통령 당선인은 언제 어디에서나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배우고 연구해서 잘 소통하고 잘 설득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

안정과 질서, 국가 발전을 위해 참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자유와 정의, 평등도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제 박 당선인과 그 주변의 정치세력들이 이 두 가지 토끼를 다 잡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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