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습관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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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19:11 조회2,3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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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이나 조직폭력배로 형을 살던 이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출옥해서 목회자가 되고 간증집회를 다니고 해서 교계의 기대를 한껏 모은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기 일쑤다.

다시 예전의 범죄로 빠져들기 다반사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을 일거에 끊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나쁜 습관은 왜곡된 의지에서 비롯된다. 음주습관을 예로 든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 몇 가지 해소 방법을 생각한다. 잠자기, 운동하기, 술 마시기의 해법들을 내놓는다.

이 세 가지 생각이 실행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의지를 통과해야만 한다. 생각은 수면과 운동이 음주보다 더 건전한 것임을 알지만 죄악으로 뒤틀린 의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생각대로 순순히 따라주지 않는다. (생각이나 의지는 다 똑같은 마음이지만 그 기능은 다르다).



 한 영혼 안에 세 의지가 서로 다투는데 술 마시자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다른 두 의지들을 꺾게 될 때 술을 마시게 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거듭해서 술을 마시니 하나의 습관으로 고착된다. 음주습관의 종착점은 알코올 중독증이다.

그렇다면 음주습관과 그 극단적 형태로서의 알코올 중독증은 건전한 것보다는 불건전한 것을 더 선호하는 왜곡된 의지에서 촉발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습관의 폭력 앞에 전율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의해 묶여 있었습니다. …

그렇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왜곡되어 육욕이 생겼고, 육욕을 계속 따름으로써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저항하지 못해 필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음주습관의 경우 우리의 자유의지가 건전하고 올바른 의지가 아닌, 불건전하고 왜곡된 의지에 스스로 묶여 노예의지로 전락한 결과로써 일어난다.

이렇게 우리가 왜곡된 의지에 붙들려 꼼짝달싹 못하고 못된 습관을 반복할 때 습관의 폭력에 사로잡힌다고 말한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필연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흉한 습관을 끊지 못해 신음하는 이들이 많다. 나쁜 습관을 벗고 좋은 습관을 입는 일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지가 뒤틀려 나쁜 습관을 낳아 폭력적인 힘을 행사하기에 그 원흉인 의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불순한 의지부터 정화시켜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주초(酒草) 습관을 일거에 끊은 이들이 그 얼마던가. 아직 정월달이다.



나쁜 습관을 청산하기에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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