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미드바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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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21:42 조회2,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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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가 주는 유익들 가운데 하나는 현장감이다. 예컨대 십계명은 왜 돌판에 새겨졌으며 언약궤는 왜 싯딤나무로 만들어졌을까?

시내산은 온통 시뻘건 바윗돌밖에 없고 사막에서 언약궤를 만들 만한 나무는 싯딤나무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장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문제이다.



 난생 처음 성지순례를 했다.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로마→스위스를 잇는 여정이었다. 돌아와 생각하니 광야에서 태동한 유대-기독교가 어떻게 그 야성과 순수성을 잃고 점점 더 변질되고 오염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기막힌 코스였다. 출애굽 경로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지역들을 지나올 때마다 원망하기 좋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내가 만일 그런 광야에 내동댕이쳐졌더라면 훨씬

더 볼썽사나운 불평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밤중에 낙타를 타고 올라간 시내산은 죽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 환한 대낮이었으면 도저히 못 올라갔으리라. 눈에 뵈는 것이 없었으니 세상 모르고 올라갔다.

새벽이 밝아오면서 환히 자태를 드러낸 시내산은 하나님이 나타나시기에 족히 영험한 산이었다.


 요르단에서는 모세가 올라간 느보산이 일품이었다. 멀리 사해와 요단강 건너 여리고가 한눈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을 묵묵히 바라봐야만 했던 모세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이스라엘에 들어서서는

예수 공생애의 주무대였던 갈릴리 지역이 예루살렘보다 훨씬 더 좋았다. 아직 종교적이고 상업적인 물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상됐던 예수 수난의 길(via dolorosa)은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성지로 추정되는 곳들마다 이처럼 지나친 치장과 상업성으로 인해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예루살렘을 향해 비분의 눈물을 흘렸던 예수님의 심정이 생각났다.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과 세계 최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가히 기독교 예술의 절정이었다. 엄청난 볼거리에 정신이 아득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왠지 나사렛 예수의 정신으로부터는 크게 빗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눈이 팔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빼앗긴 넋은 개혁자 츠빙글리가 시무했던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 교회를 방문했을 때 되돌아왔다.

개신교가 옳다는 확신과 함께 알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결국 이집트의 광야는 스위스의 개혁정신과 다시 만나는 것은 아닐까.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로부터 온다는 뜻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뒤 광야를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광야의 야성과 순수성을 잃고 상업화와 우상화로 치달려온 성지들을 둘러보면서 유독 광야의 아득한 풍경만이 선연히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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