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화해와 구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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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21:45 조회2,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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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용은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에 나타난 객관적 화해론의 핵심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만인은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미 객관적으로 하나님과 화해되어 있

다. 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 화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관적 화해론과 배치된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는 인간의 주관적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이 결정할

 문제라는 바르트의 통찰력은 신선하다. 하나님은 나의 믿음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용서하심으로써 인류와의 객관적 화해를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나 '화해'와 '구원'은 다르다. 화해는 객관적으로 일어났지만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이라는 주체적 결단으로서 일어난다. 바르트는 화해와 구원의 차이를 하나의 비유로 설명한

다. 2차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인 하나가 나치의 폭정을 피해 알프스 산속 깊이 숨어들었다. 나치의 패망을 학수고대했는데 나치가 망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자유와 해방이 객관적으로 성취되었으나

그는 아직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나치 패망의 소식을 전해줄 때, 또 전해준 다음에도 그가 그것을 진실로 믿을 때 객관적 사실이 그에게 유효해진다.



 나치가 망한 사건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화해사건이다. 그러나 알프스 산속에 있는 사람은 아직 나치가 망한 소식을 듣지 못했으므로 구원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치 패망의 기쁜 소식을 듣고,

또 들은 뒤 그 소식을 진실로 믿고 알프스로부터 내려와 오스트리아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구원을 얻지 못한다.



만인은 하나님과 이미 화해되어 있으나 이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객관적 화해 사실을 아직 듣지 못했고, 또 들었어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구원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치 패망의 기쁜 소식이

전달되지 않은 알프스 산속은 이미 망해버린 나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이미 십자가 위에서 패망한 사단의 세력이 그 패망을 듣지 못하고, 또 들었어도 믿지 못하는 세상을 여전히 지배하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교회와 선교의 시간은 화해와 구원 사이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이 나치가 망한 소식을 듣고서도 알프스 산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은 교만의 죄이다. 자유의 기쁨을 회복한 오스트리아에 대해서 듣고서도 내려가지 않겠다는

어리석음은 태만의 죄이다. 나치가 망했다는 소식을 거짓으로 치부하는 것은 기만으로서의 죄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사단이 패망한 복음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양태인 것이다.

화해에서 구원으로 가는 선교의 시간에 오늘도 만나는 전형적인 복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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