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모자람의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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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21:46 조회2,1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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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민이 MB 정권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각료와 비서진이 지나치게 부유하다는 사실이다. 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과연 그들이 서민들의 애환과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을 갖

는다. 부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청부(淸富)라는 말도 있듯 피땀 흘려 깨끗하게 번 돈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마는 훨씬 더 중대한 문제는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그럼에도 지나친 부는 언제나 질시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도 사실이다.



 가난의 경우, 빈곤은 퇴치와 추방의 대상이 된다. 그 빈곤이 자신의 무능과 나태로 인해 발생할 경우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사회적인 현상으로서 빈곤과 악순환은 부정부패를 통하여

사람들을 가난의 사슬에 매이게 하는 정치·경제적인 구조악과 그 배후의 부유한 권력층에 혐의를 둔다.



가난의 부정적인 형태인 빈곤과 달리 자발적이며 영성적인 가난, 청빈(淸貧)도 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부요할 수 있었으나 스스로 비워서(Kenosis) 가난뱅이가 되셨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으나 가난한 이웃을 배려해서 자발적인 청빈의 길을 걷는다. 가난한 이웃과의 연대의식을 가지며 부자와 빈자의 분열에 저항한다.

참으로 쉽지 않지만 이런 개인과 교회가 예수께 근접하지 않을까.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달콤한 잠은 살 수 없다.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다.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식욕은 살 수 없다.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친구는 살 수 없다.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여권은 살 수 있지만 천국은 살 수 없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Mammonism)라는 우상과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기본적으로, 조금 모자란 듯이 살면 좋지 않을까.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생활하기에 조금 부족한 듯 한 재물, 칭찬받기에는 조금 떨어진 용모,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청중의 절반가량만 박수 쳐줄 정도의 연설 실력." 모두 약간 모자란 상태이다. 그 끝을 모르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미덕들이지만 거기에 인류의 희망이

있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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