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산 자들을 위한 죽은 자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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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04 조회2,2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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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 19∼31)의 한 독법. 부자는 왕족과 귀족들이 입었던 최고급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 초호화판 저택에서 산해진미를 총동원하여 연일 잔치를 벌였다.

부잣집 대문 앞에 거지 하나가 누워서 손님들이 먹다버린 빵부스러기에 목숨을 걸었다. 간신히 부끄러운 데나 가릴 정도의 겉옷만 걸쳤고 사나운 들개들이 독한 피부병으로 상한 헌데를 핥았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의 나사로(엘리에셀). 세상에서는 하나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못할 신세였다.



양자의 운명은 죽어서 대역전된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부자는 사위에 화염이 날름거리는 음부에 떨어진다. 부자는 목이 타 나사로를 자기에게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혀를 시원케 해달

라고 아브라함을 보챈다. 살아생전 나사로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한 조각을 기다렸지만, 죽은 뒤 지금은 부자가 나사로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을 목말라 한다.



  아브라함의 응답은 차갑다. 나사로의 낙원과 부자의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서 서로 왕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널 수 없는 심연. 아, 이것은 이미 생전에 부자 스스로가 파놓은 간격이

아니던가! 라이프스타일이 너무도 달랐기에 부자는 거지에게 다가서려고 하지 않았다. 지상에서 부자의 철저한 무관심으로 생긴 거리 때문에 나사로가 부자 쪽으로 갈 수 없었다.

사후에 정반대로 부자가 나사로 쪽으로 가려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생전에 부자가 파놓은 심연이 사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부자는 죽은 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통감한다. 즉각 살아 있는 오형제를 걱정한다.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은 나머지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기를 염원한다. 나사로를 보내어 경고하면 회개할 것이라

고 간청하나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만 들어도 족하다고 답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대로 살면 지옥에 올 일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와 우리를 동일화해야 할까? 부자? 나사로? 부자의 다섯 형제들이 옳다. 살아 있는 오형제야말로 비유를 듣는 청자요 우리이다. 사후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회

개하고 행실을 고쳐 불행한 내세를 예방할 수 있다. 오늘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갖가지 심연들을 만든다. 범인(凡人)이 근접할 수 없는 특별한 세계가 너무도 많다. 학벌과 돈과 권력의 삽으로 파놓은 골

이 얼마나 깊은가. 하지만 기억하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드는 심연이 저 세상에서 정반대의 심연을 낳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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