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죄의 사회성을 경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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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18 조회2,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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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어린 시절 혼자였으면 배서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실토한다. 죄의 공모자들로서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 죄를 짓는 경향이 있다.

아담도 선악과를 하와와 함께 나누었다.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긴 이들도 10형제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도 빌라도를 비롯한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 유대 지도자들이 총공모하여

일으킨 합작품이었다.



 사람은 왜 함께 죄를 지으려 할까? 죄책감이 경감되기 때문이리라. 홀로 죄를 지을 때보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훨씬 덜 예민해진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불려나와 벌을 선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 앞에 홀로 나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 때 퍽이나 부끄러우나,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 함께 벌을 서면 적이 위로가 된다. 벌을 받는 친구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이내 양심의 통증도

 무뎌져, 나중에는 묘한 희열감이나 영웅심마저 느끼게 된다. "내가 짓는 죄악에 합류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이 편해지고 급기야 죄가 죄인 줄 모르게 된다." 이른바 죄의 사회성 현상인 것이다.

예컨대 목회세습을 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묵인되는 이치이다.



 우리 교단은 지금 교단장 당선자 시비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이번 논란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금권과 학연에 휘둘려 깊이 패인 환부들이 한꺼번에 곪아 터진 사태이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흙탕 정치판에 휩쓸려 양심이 둔해질 대로 둔해진 일부 정치 브로커들을 필두로 우리 모두가 무감각하게 동조해 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당선자라고 자임하는 이들의 지지 세력이 만만치 않다. 법적인 기준이나 원칙이 있어 명백히 어느 한 쪽이 잘못되었을 터인데도 학연을 비롯한 각종 이해관계에 따른 파당적 편들기가 완연하다.

여기에서도 죄는 어김없이 사회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난국을 수습할 방안은? 학연주의와 금권주의, 감투욕에 침륜당하여 시류에 야합하고 각종 타락을 조장해온 패거리에서부터 뛰쳐나와 신앙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한 왕따 당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에 목마른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 "저는 메도디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메도디스트 교회가 종교의 형식만 갖춘 채 능력 없는, 죽은 교파가 될까봐 두려울 뿐입니다."(존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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