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숨김이 미덕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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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22 조회2,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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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큰 스승이 드물다고 말한다. 우리 감리교회만 하더라도 교단장 당선자 시비로 큰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를 중재할 원로가 없는 듯 보인다. 물밑으로는 어떤 논의들이 오가는지 몰라도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해줄 스승은 없어 보인다. 기독교계와 사회 전반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스타는 많아도 참 스승은 찾기 어렵다. 왜 그럴까?



 숱한 답변들이 가능하겠지만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것이 까발려져 내밀한 공간이 사라진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열리면서 개인의 숨겨진 부분이 낱낱이 발가벗겨져 더 이상

신비한 구석이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한경직 같은 옛 스승들이라고 해서 왜 약점이 없었겠는가마는 그들은 그래도 정보가 매우 더딘, 아날로그의 시대를 살았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나 단점을 알았을 뿐,

멀리에서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은폐된 영역이 훨씬 더 많았으며 워낙 출중한 인품이나 장점만이 입소문이나 인쇄 매체를 통해 회자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숨겨진 영역 때문에 그마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시대에는 조금이라도 실수할라치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제주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퍼질 수 있다. 유명 인사가 될수록 그 노출의 정도는 더욱 심해져 매순간 추적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교단의 내홍을 해외에 있는 이들이 훨씬 더 소상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꽤 괜찮은 지도자라고 해도 속속들이 파헤쳐져 신비의 영역이 남을 여지가 없는 시대이다.



 루터의 말대로 하나님은 왜 '숨어계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일까? 눈앞에 보이면 금방 싫증나기 때문이 아닐까? 은밀히 계시기에 더 궁금하고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성(性)도 그렇다.

 다 여는 것보다는 적당히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극찬한 내용인데 동산과 우물, 샘은 모두 성

애의 기쁨과 관련된 여성성을 상징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잠근' '덮은' '봉한'과 같이 폐쇄를 뜻하는 형용사들이다. 성의 기쁨은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히 닫혀야 하고 오직 신랑에게만 열어젖혀야 한다는 뜻

이다. 여기에서도 숨김의 미학은 두드러진다.



더 빨리, 더 많이 까발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 더 더디 가고, 더 숨기는 것이 훨씬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첩경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큰 스승들은 많다.

다만 우리 시대가 신비의 영역을 남겨두려 하지 않기에 스승이 없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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