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대통령의 목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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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27 조회2,1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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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통령이 가락시장을 방문했다. 너무 반갑고 힘든 나머지 한 할머니가 대통령의 팔에 매달려 와락 눈물을 터뜨렸다. 할머니의 수입은 온 종일 일해 봤자 2만 원도 되지 않았다.

안쓰러운 대통령은 20년 동안 쓰던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할머니에게 매주었다. 즉석에서 5천 원짜리 시래기 4개를 달라며 2만 원을 건네자 할머니는 받지 않겠다고 버티다 결국 졌다.

이 후 대통령은 할머니가 “'대통령이 잘 되길 바라는 기도를 하겠다'고 하는데 눈물이 난다.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기도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기도하다니…”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혹자는 정치적 제스처라며 혹평한다. 악어의 눈물처럼 연출된 위선이라고 악평한다. 모든 것을 곡해하는 삐뚤어진 세태이다. 삐딱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일체의 행위가 다 삐딱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목에 둘렀던 목도리가 가난한 할머니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그 목도리는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거리의 민초와 함께 있겠다는 결단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강절에 ‘구유에 뉘인 왕’을 생각한다. 구유는 짐승의 밥통이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 하나님의 외아들이 황금 침상이나 요람이 아닌 여물통에 뉘었다니. 성탄의 신비와 역설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구유 속의 아기 예수로 오셨다. 그것도 순전히 죽기 위해 태어나셨다.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해 십자가 위에 죽고자 나신 그 가여운 아기.

십자가 없는 성탄은 의미가 없다.


 구유에 누운 왕은 죄인과 함께 계시기로 작정한 하나님 사랑의 결정판이다. 하나님은 영광과 부귀와 권세를 한 손에 쥔 군주의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다. 구유에 누운 어리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

영광이 아닌 수치로, 부귀가 아닌 가난으로, 권세가 아닌 겸손으로, 강함이 아닌 약함으로, 힘이 아닌 사랑으로 오셨다.


 대통령이 서민들의 민생을 적극 챙기고 상처를 어루만지려고 한다는 훈훈한 소식이다. 색안경을 쓰지 말자. 순수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목에 둘린 대통령의 목도리와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를 보자.


 “내 비밀이란 이런 거야.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생텍쥐페리)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 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 되죠.”(도스토예프스키) “침묵의 열매는 기도이며, 기도의 열매는 신앙이며, 신앙의 열매는 사랑이며,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며, 봉사의 열매는 평화이다.”(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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