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다시 광야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18:36 조회2,166회 댓글0건

본문

광야는 빈들이다.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다.

전갈과 뱀과 여우와 늑대와 하이에나와 독수리, 야생 짐승들이 우글거린다.

아름다운 꽃도 우거진 숲도 없다. 키 작고 물기 없어 바싹 마른 가시덤불, 잡목들이 널려 있다.

흙덮여 벌건 바윗돌만 간간이 보일 뿐 끝없는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다.

거칠고 메마르다. 물과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렵다. 사방이 쓸쓸하고 외로워 하늘만 빠끔히 보인다. 흙바람 부는 불모의 땅, 버려진 황무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살았다.

사흘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지만 굳이 광야길을 걸어야만 했다.

사람 살기 힘들었기에 불평과 원망이 그치지 않았다. 이내 익숙하고 편리했던 이집트 생활이 그리웠다.

종으로 살았던 옛 습관을 버리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그러나 자유인이 되기 위해 광야는 필수 코스였다.


하나님은 물 없는 사막에서 물을 주셨다. 먹거리 없는 빈들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다.

일용할 양식을 어김없이 주셨다. 여분의 만나를 몰래 비축하는 것은 불신앙이었다.

광야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살아남은 곳이었다. 눈을 들어 하나님만 바라보면 됐다.

귀를 열어 주님의 음성만 들으면 됐다. 광야는 종의 구습을 청산하고 자유인의 신생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다.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가는 정거장이었다.       


 교인수가 많아도 외롭다. 교회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해도 쓸쓸하다. 영예롭고 힘있는 자리에 올라가도 허전하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존경해주어도 기쁨이 없다.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다. 왜 그럴까? 물이 깊어야 큰배가 뜨는데 때로 우리 가슴은 종이배 하나 뜨지 못할 만큼 얕고 가볍다.

그렇다.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깊어지려면? 광야의 영성이다.



 엑카르트는 말한다. “하나님께 도달하는 과정은 영혼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묻은 그 무엇을 털어내는 것이다.”

덧붙이고 채우는 것이 아닌, 털어 내고 비울 때 깊어진다. 깊어지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순결하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한다. 정직하게 홀로 하나님과 씨름하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한다.


거짓된 삶을 치열하게 성찰하기 위해 광야에 서야 한다. 어느새 타성에 젖어 굳어진 우리의 신앙을 깨고 부수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한다.

거기 광야에서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일체의 허위를 치우고 진실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세례 요한의 외치는 진리의 소리를 듣기 위해 광야로 간다.

부와 명예와 권세로 예수님을 유혹했던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광야로 간다.



그대 다시 광야에 서야 하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