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욥기 강해설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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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1 15:57 조회7,8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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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맞아?"
<욥 2: 1-13>


  남다른 경건과 도덕성으로 큰 축복을 받던 욥에게 감당키 어려운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녀들은 모두 비명횡사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련은 사단의 참소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새벽에 읽었던 1: 9절의 말씀 "욥이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자녀의 복을 주시고 경제적인 번영을 주시니까 하나님 잘 섬기는 것이지 그 같은 울타리를 모조리 치워 보십시오.

 욥이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하고 저주할 것입니다(1: 11).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끝없이 고발하고 참소하는 자로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시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찬양했습니다.

당연히 사탄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은 욥에게 닥친 두 번째 시련과 욥 자신의 반응,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천상에서의 두 번째 회의(2: 1-6)


  2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어디 갔다고 오는 길이냐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대화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주의 통치권자로서 사탄에게 질문을 던지시고 사탄의 보고를 받으시는 모습이지요.

이제 3절이 중요합니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서 공연히 그를 해치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

 

 여기서 하나님은 욥의 한결같은 신앙과 인격을 극찬하십니다.

욥이 하나님의 기대대로 사심없이 어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 신앙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욥이 겪은 엄청난 시련이 전혀 까닭 없이 사탄이 부추겨서 일어난 애매하고 부당한 고난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십니다.

 

 

  여러분, 사탄의 제일 가는 사명은 우리의 믿음을 꺾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끝없이 참소하고 고발하는 것이 사탄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신앙으로, 자기추구적이며 실리추구적인 신앙으로 떨어지도록 끝없이 유혹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이제 부당한 고난을 당하고서도 여전히 하나님 섬기기를 그치지 않는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은 또 다른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보세요.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 여기에 보면 사탄은 한층 더 강도를 높여 이제는 욥 자신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면 하나님을 버릴 것이라고 충동질합니다.

첫 번째 시련은 재산과 자녀들을 잃어버린 것이었지만 이제 욥 자신의 뼈와 살을 치시면 바로 자신의 생명의 위협 때문에

 욥이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지요.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은 하나의 속담인데 베두인들이 동물 가죽을 중요한 교환물품으로

사용하던 시대에 생겨난 말입니다. 등가(等價), 즉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을 서로 맞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의 생명을 위협하면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버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제시한 두 번째 제안도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언제나 욥의 생명만큼은 빼앗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장면은 천상에서부터 지상으로 바뀌게 되고

모든 일이 땅위에서 전개됩니다.

 

 

  2. 욥 자신에게 닥친 두 번째 시련과 욥의 반응(2: 7-10)


  7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의 허락을 얻은 사탄은 곧바로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성 종기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악과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 때문에 오는 것이기에

그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 한 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치는 것은 사탄입니다.

 

 하나님께서 악과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당하는 악과 고통은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이 곧바로 욥을 쳐서 악성 종기, 어떤 사람은 나병이라고도

말하는 피부병이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번져 토기 조각으로 몸을 긁게 된 것입니다.

 

욥의 재산과 자녀들에게 불어닥친 재앙이 마침내 욥 자신에게까지 번져 온 것입니다.

여기서 악성 종기는 얼마나 독한 피부병인지 모릅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토기 조각으로 긁어야 할 만큼 가렵고 남들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외모에도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피부가 터지고 진물이 나며 눈물과 악취를 동반할 뿐 아니라 피부가 검게 타고 마침내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됩니다.

뼈만 남을 때까지 계속 헌데를 긁고 또 긁게 되니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병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그럴듯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종기병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이 더욱 큰 아픔입니다.

일체의 공민권을 박탈당한다는 것이 더욱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 것이지요.

 그리하여 욥은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교외로 나가 잿더미 위에 홀로 앉아 자기 피부를 긁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죽음으로서 철저한 소외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 이와 같이 처절한 상황, 즉 재산과 자식들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자기는 병까지 걸린 마당에

 욥에게 단 하나 남은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내가 입을 엽니다. 9절 말씀을 보세요.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통상적인 해석을 따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기하게도 사탄의 말과 꼭 닮았습니다.

"욥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치시면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사탄의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재산도 자식들도 다 잃고 마침내 당신 자신까지도 죽게 된 마당에 그래도 신앙을 지키려고 합니까?

차라리 죽어버리세요! 아내로서 얼마나 속이 상하면 이런 말을 다했겠습니까?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너무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어거스틴은 욥의 아내를 '악마의 보조자'라고 말했고, 칼빈 역시 '사탄의 도구'라고 혹평했습니다.

 

 

 

  아내가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을 때 욥의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세요.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여기 보면 욥은 먼저 아내를 꾸짖습니다.

 

 

당신도 어리석은 여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며 질책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대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을 것이 있소?"

 

 

욥은 길흉화복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복을 주시고 거두시는 주체가 사람도 아니고 팔자소관 운명도 아니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욥은 두 번째로 자기 자신이 견딜 수 없이 가혹한 형벌을 받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저주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욥은 이렇게 두 번째 시련도 의연하게 믿음으로 견디어 냈습니다.

그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신앙은 일관된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두 차례에 걸친 사탄의 시도는 어이없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욥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들과 관련된 재앙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렸어도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심 없는 신앙의 가능성에 대한 욥의 승리이자 하나님의 완승이었으며 사탄의 완패였습니다!

 

 

 

 3.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 



  우리의 믿음이 순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사랑합니까? 우리에게 좋은 일만 생기기 때문에,

유익이 있고, 건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까? 아니면 징벌을 받을까봐 두려움 때문에 그리합니까?

사탄이 우리를 끝없이 걸고넘어지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것들이 저렇게 하나님 잘 믿고 잘 섬기는 것은 다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까닭 없이도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은 없다." 욥에게 불같은 시험이 닥쳤던 이유도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까닭 없이 바라는 것 없이도 하나님을 잘 믿고 사랑할 수 있는지요?

 그냥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고 사랑할 수는 없는지요? 복을 주실 때에만이 아니고 복을 거두어 가실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지요? 다른 가족들과 재산뿐만 아니라 마침내 내 자신에까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지요? 욥이 위대한 것은 이와 같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신앙의 테스트를 다 통과해서

믿음의 순전함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욥의 순전한 믿음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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