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사무엘하 강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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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6:49 조회4,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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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0일(금) 새벽 기도회 설교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하려던 시도는 선한 것이었지만 율법의 규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1차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수단도 중요하다는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기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1차 운반 실패로 법궤는 가드의 오벧에돔의 집에 가서 석달간 보관되어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두 번째로 법궤 운반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법대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부터 예루살렘의 다윗성까지 순조롭게 운반한 과정과 그 결과를 그리고 있습니다.

 

 

 1. 본문 분석


 ①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은 석 달 동안 법궤를 보관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큰복을 받았습니다.

단지 자신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에게 딸린 모든 것이 복을 받았습니다.

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복 받았다는 말씀이 11절과 12절에 두 번이나 걸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마다 큰복을 받습니다.

 

 

 ② 다윗은 율법의 규례대로 법궤를 운반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아닌 인간의 수단으로 법궤를 운반하려 했을 때 큰 낭패를 봤습니다.

웃사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 일로 다윗은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도저히 법궤를 자기가 사는 다윗성으로 곧바로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벧에돔의 집으로 실어가게 했던 것입니다.

 

 법궤를 간수하는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저으기 안심을 하고

 법궤를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모셔올 작정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법대로 운반하려고 했습니다.

 1차 실패가 순전히 율법의 규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대상 15: 2, 12, 13).

 

 2차 법궤 운반에는 율법이 정한대로 철저히 레위 사람 8명을 뽑아서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했습니다(대상 15: 11 참조).

법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아무 탈 없이 옮기게 되자 하나님께서 법궤 운반을 허락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소와 살진 것, 즉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감사의 제사로 드렸습니다(대상 15: 26).

 

 

 ③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하나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1차 때와는 달리 2차 때는 법궤 운반이 순조로웠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했더니 하나님께서 순순히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으며

곧이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에봇만 걸치고 춤을 추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가운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종교의식이 있을 때 걸쳤던 웃옷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④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의 경망스러움에 대하여 흉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무사히 다윗성까지 모셔온 것을 감사하면서 법궤 봉헌 예배를 드렸습니다.

먼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17절), 백성들을 축복했으며(18절),

참석자들에게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을 나누어준 뒤 폐회했습니다(19절).

 

 문제는 이와 같이 법궤 봉헌예배를 은혜롭게 잘 드린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기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1차 운반 때에는 웃사가 죽더니만 2차 운반도 그 결과는 게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받은 다음에 마귀가 더 강하게 역사한다는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미갈이 다윗에게 트집을 잡은 것은 공교롭게도 다윗이 기쁨에 겨워

자기 가족들을 축복하려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법궤 봉헌을 은혜롭게 잘 마치고 온 백성들을 다 축복해주고 난 뒤 행복에 겨워

이제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인 미갈이 다윗의 흉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갈이 다윗에게 꼬투리를 잡은 것은 20절에 잘 나타납니다. 표준 새번역 개정판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미갈은 다윗이 춤을 춘 행위는 왕으로서의 위엄과 체통을 구기는 일이라고 혹평을 했던 것입니다.


 
 ⑤ 미갈의 비난에 대해 다윗이 신앙적으로 반박했습니다.  


 미갈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닐진대 다윗은 미갈과는 달리 신앙적으로 대꾸했습니다.

21-22절을 표준 새번역 개정판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대답하였다.

 

 '그렇소.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 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

 

 

 다윗의 논박을 간단히 정리하면 자신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춤을 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일국의 왕으로서 백성들 앞에서는 위엄을 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인 까닭에

그 앞에서 뛰노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비록 자신이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미갈이 믿음 없는 눈으로 다윗을 폄하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자식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다윗과 미갈 사이에 벌어진 춤 논쟁은 참된 경건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미갈은 춤을 추는 것이 세속적이며 불경하며 무엇보다도

 왕의 체통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통상적인 견해와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순수한 신앙심만 움직이면 왕이고 무엇이고 간에 얼마든지 춤을 출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쁨이 겨울 때에는 왕의 체통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순수한 동기와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어떤 춤과 노래는

세속적인 것이 될 수도 있으며 거룩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춤과 노래 자체가 세속적이며 성스러운 것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기와 마음의 태도가 성(聖)과 속(俗)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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