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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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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46 조회6,4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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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19): '장벽을 무너뜨려라!'  

 <요 4: 1-9>


 <본문 배경>
 팔레스타인은 남북 길이가 120마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은 크게 세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최북단에 갈릴리가 놓여 있었고, 최남단에 유다 지방이, 그리고 양 가운데 사마리아 지방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를 놓고 볼 때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다 지역을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로 결심했는데,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보다 세례를 더 많이 베푸시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알려져 세례 문제가 큰 이슈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문제로 바리새인들의 눈총을 더 이상 받지 않으시려는 뜻에서 그동안 유다 지방에서 활동하시다가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유다 지역에서 갈릴리로 이동하시려고 할 때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 경우 가장 빨리 갈 수 있습니다.  한 3일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굉장히 깊은 반목과 질시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 시대의 보통 유대인들은 유다 지방에서 갈릴리로 가려고 할 때 훨씬 더 멀고 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요단강을 건넌 뒤, 사마리아 국경 지대를 피하기 위해서 요단강 동쪽 편으로 갑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요단강 북쪽을 넘어서 갈릴리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는 것보다 약 두 배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관습대로 하지 않으시고 사마리아 지역을 직접 당당하게 통과해서 갈릴리 지역으로 옮기시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편하고 빨리 여행을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라 사마리아 지역에도 복음을 전파하시려는 뜻을 가지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멸시받던 사마리아 민족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었지요.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뿌리깊게 패인 골을 메우시고 모든 증오의 장벽을 헐어버리실 작정으로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셨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셔서 수가 성이라는 곳에 도착하셨을 때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가 성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날 때 아들 요셉에게 주었던 우물이지요(창 48: 22).  그리고 바로 이곳에 애굽에서 죽은 요셉의 시신을 모셔다가 장사를 지냈던(수 24: 32) 유서 깊은 장소였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매우 깊었습니다.  깊이가 30 미터 정도, 지름이 3 미터, 그리고 물깊이만 5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이 물은 두레박이 있어야지만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왜 야곱의 우물에 왔는지 궁금한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이 여자는 유대 시간으로 제 육시, 즉 정오에 물 길러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를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속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제 육시라 함은 정오를 말합니다.  여자들이 물 길러 가는 것은 아침 일찍 아니면 해가 진 저녁에 갑니다.  더위를 피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여자는 중동 지방에 뜨거운 태양이 내려 쪼이는 한낮에 왜 물 길러 왔을까요?  이것은 분명히 이 여자가 떳떳치 못한 여자였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여자가 살던 수가성에서부터 야곱의 우물까지는 반 마일 이상이 됩니다.  분명히 자기 동네에도 우물이 있었겠지만 이 여자는 먼 거리를 걸어서 일부러 야곱의 우물까지 왔던 것입니다.  왜요?  아마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도덕적으로 깨끗지 못한 여자로 낙인 찍혀서 왕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네에 있는 우물을 피해서 야곱의 우물까지 물 길러 왔던 것입니다.

 이런 도덕적으로 떳떳치 못한 여자, 동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대화를 건네시면서 이 여자와 예수님 사이에 가로 놓였던 세 가지 장벽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세 가지 장벽을 무너뜨리시다>
 

① 민족적인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증오심은 아주 뿌리깊은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이스라엘 10개 지파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720년 경 앗수르 제국이 사마리아를 쳐들어와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켜버렸습니다.  왕하 17: 6에 보면 앗수르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메데로 이주시켰습니다.  이 때 앗수르가 정복한 메데 지역으로 수많은 족속들이 흘러 들어 왔습니다.  왕하 17: 24에 보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이주시켜왔던 것이지요.  바로 이 때로부터 사마리아인들은 다른 종족들과 섞여서 혼인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이스라엘 혈통을 잃어버리고 여러 다른 종족들과 잡혼을 해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순수 혈통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겼던 유대인들이 볼 때 이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도 아주 보수적인 유대교 가정에서는 타민족과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만일 아들이나 딸이 타민족과 결혼할 경우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통 유대교 신자들은 사마리아인을 아주 천대했습니다.  유대인으로 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유대 민족의 피를 더럽힌 원수로까지 멸시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사마리아인들과는 식사를 함께 해서 안 된다고 가르쳤으며 만일 식탁을 함께 하는 자는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먹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와 같이 정통 유대교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증오와 반목의 강이 놓여 있었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이 여자와 대화를 나누신 것은 수 백년 동안 지속되어 온 민족적 장벽을 뛰어 넘으신 것입니다. 

 

② 성적인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대낮에 남자가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역시 혁명적인 일입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는 철저히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어떤 여자이든지 외간 남자와 접촉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공중 석상에서 여자에 인사하는 행위까지도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심지어 유대 랍비들은 자기 아내나 자기 딸 혹은 여동생이나 누나와도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말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가운데 '얻어터지고 피흘리는 바리새인들'(the bruised and bleeding Pharisees)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길을 걸어가는 여자나 아니면 자기 집에 들어가는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죄를 짓는다고 해서 눈을 감든지 딴 곳을 쳐다봐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일 랍비나 바리새인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여자와 대화라도 나눈 날은 그 사람의 명성은 그 날부터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얼마나 엄격한 남녀 차별의 시대였던지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두 가지를 감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하나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 하나를!

 바로 이와 같은 지독한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예수님은 한낮에 여자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천대하던 사마리아 여자요, 행실이 좋지 못해서 자기 마을에서도 완전히 왕따가 된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놓여 있는 모든 성적인 장벽을 깨끗이 허물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③ 종교적인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라리아인들은 종교적인 관습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단절되어 살게 되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이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들의 도움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깊은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양 민족 간에 종교적인 간격이 깊어진 것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사마리아인 산발랏의 딸과 결혼함으로서 유대교를 버렸을 때였습니다(느 13: 28 참조).  그리고 이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과 경쟁하기 위해서 사마리아 지역 중심부에 있었던 그리심산 위에다가 사마리아인들을 위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후부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더 낫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있는 자기 민족의 성전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더 낫다 하면서 종교적인 경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129년 경 유대인 장군 요한 히르쿠누스(John Hyrcanus)가 사마리아를 침략해서 그리심산 성전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을 믿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으며 서로가 더 우월하다는 경쟁심에 불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혀 새로운 방법의 예배 방법을 일러주심을 통하여 두 민족 사이에 깊이 패인 종교적 장벽까지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결어: 대립과 장벽을 넘어서>
 사람 사이에 장벽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낮은 울타리」라는 잡지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리 사이의 모든 울타리는 낮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손수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이 땅위의 모든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성적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되는 일에 우리부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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