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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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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2:04 조회6,6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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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51): '목자와 양'  

         <요 10: 1-6>

 

 요 10장은 예수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양의 문' 혹은 '선한 목자'로 말씀하시면서 다른 거짓 목자들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하필이면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하여 당신의 역할을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 시대의 '목자'와 '양'의 관계를 알아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은 중앙 고원 지대로서 베델에서 헤브론까지 약 35 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땅은 험하고 거의 다 돌짝밭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형 조건 때문에 유대 땅은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유목을 하기에는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목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했습니다. 

 목자의 생활은 결코 편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비천하고 고달픈 직업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것은 양떼들이 목자 없이 홀로 풀을 뜯는 법이 없이 항상 목자가 돌보아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풀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목자들은 양들을 이곳 저곳으로 몰고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좁은 고원 어느 쪽인 가에는 바윗돌로 된 사막으로 갑자기 내려앉은 땅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양들이 길을 잃고 사라질지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양을 보호하는 울타리나 담도 없었기 때문에 목자는 잠시도 경계의 눈초리를 풀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목자는 매우 위험한 직업이었습니다.  사나운 들짐승들에 대항해서 때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습니다.  양 도둑질을 일삼는 사람들을 항상 경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겁이 없어야만 했으며 무엇보다도 양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예수님 시대의 목자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한번 살펴봅시다. 그 당시 목자들의 복장이나 도구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목자는 제일 먼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가죽 부대(scrip)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빵이나 마른 과일과 올리브 혹은 치즈 등의 음식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새총(sling)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 새총은 매우 정확했는데 목자들이 공격용 혹은 방어용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양치는 개를 따로 기르지 않았으므로 목자들은 이 새총으로 길 잃은 양들을 경고하는데 쓰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어떤 양이 무리를 벗어나 딴 곳을 서성거릴 때 새총을 그 양의 코앞에다가 쏘아서 정신을 차리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목자는 나무로 만든 작은 곤봉형의 막대기(staff)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막대기의 끄트머리에는 못이 여러 개 박혀 있었으며 위쪽 손잡이에는 대개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가죽끈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바로 이 가죽끈으로 막대기를 목자의 허리춤에 매달아 놓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했던 것이지요.  어쨌거나 목자는 이 막대기를 가지고 양을 공격하는 이리떼나 약탈자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 지나서 양들을 우리 안에 가두게 될 때 목자는 막대기를 출입구를 향하여 가능한 낮게 듭니다.  이 막대기 밑으로 양을 한 마리씩 지나가도록 해서 그 날 하루 동안 상처입은 양들이 없나 가려내기 위해서이지요(겔 20: 37; 레 27: 32 참조).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항상 앞서 가면서 양들을 인도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가 앞서 갈 때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뒤따라갑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양은 주로 양털을 얻기 위해서 길렀기 때문에 목자와 양들이 여러 해 동안 동고동락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서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개 양의 특징을 서술하는 이름이 많았는데, 예컨대 '갈색 다리,' '까만 귀,' '홀쭉한 배' 등의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양들은 시력이 아주 퇴화해서 불과 10 미터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의 모습을 보고 뒤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노랫소리 휘파람 소리 등의 소리를 듣고 뒤를 따라 갔습니다. 

 성경에는 좋은 지도자를 목자에 비유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가령 모세는 출애굽의 영도자가 되기 전에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조심성 있는 목자였던지 양들을 인도할 때마다 맨 앞에 어린양을 세우고, 그 다음에 늙고 약한 양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젊고 힘있는 양들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한 편으로 양을 보호할 수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 나이 어리고 약한 순서대로 풀을 뜯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양을 치던 어느 날 새끼 한 마리가 길을 잃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멀리 가파른 협곡에까지 이 새끼 양을 찾아 어깨에 매고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모세가 작은 양 새끼 한 마리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니 나의 양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기에 꼭 알맞은 목자로구나" 하시면서 그를 지도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자주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 23: 1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노래했습니다.  시 79: 13은 "주의 기르시는 양 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시 80: 1은 "요셉을 양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 95: 7과 100: 3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 40: 11은 장차 메시아가 도래할 때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좋은 지도자를 선한 목자에 나쁜 지도자를 악한 목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렘 23: 1은 거짓된 지도자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은 목자"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겔 34: 2은 좋은 지도자는 양무리를 먼저 배불리 먹이는 목자이며 거짓 지도자들이 "자기만 먹이는 목자들"이라고 규탄합니다. 

 이와 같이 목자와 양의 관계는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실제 유목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목자 중에도 가장 선한 목자이십니다.  왜 선한 목자이십니까?

 

 첫째로, 본문 1-2에 보면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양도둑이나 강도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데 반해서 예수님은 양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십니다.  양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떳떳하게 정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참 목자입니다. 

 그러나 절도범이나 강도는 몰래 양무리를 침입해 들어갑니다.  요 10: 10의 말씀 그대로 그들의 목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요 10: 10의 말씀대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양문으로 들어가십니다.

 

 둘째로, 3-5을 보면 양들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뒤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거짓 목자는 양들에 대하여 세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양들이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음성으로 분별합니다. 

 두 사람의 목자가 밤이 되자 양들을 큰 동굴 안에 몰아 넣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양들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자 한 사람이 조금 멀리 떨어져서 오직 자기의 양들만이 알 수 있는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일부 양들이 그쪽으로 몰려갔습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한 마리의 다른 양도 없었습니다.  자기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거짓 목자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도망치고 맙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 앞에 서서 인도할 때마다 그 음성을 듣고 뒤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신 까닭에 그 음성을 들을 때마다 순종하며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선한 목자는 양들의 안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합니다.  양들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적과 강도는 양들을 파괴시키려고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풍요로운 생명의 꼴로 먹이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릅시다. 

 '목사'(PASTOR, 엡 4: 11)라는 말이 목자(SHEPHERD)를 지칭하는 라틴어에서부터 온 말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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