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강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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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5:22 조회5,7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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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6): '배신의 계절(I)-발단' <삼하 3: 6-11>
2004년 8월 26일(목) 새벽 기도회 설교
"천길 물 속은 알 수 있어도 한길 사람의 마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브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기를 잡겠다고 뒤쫓아오는 아사헬을 점잖게 타일렀던 사람이 아브넬이었습니다.
그런데 삼하 3장에 나타난 아브넬의 모습은 갑자기 배신자의 모습으로 바뀌어집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배신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추궁받자 이에 대한 반발로서 배신했습니다.
아브넬의 배신은 댓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다윗 정권하에 투항해온 아브넬을 요압이 벼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의 창 끝에 죽어간 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복수의 비수를 던졌던 것입니다.
배신자 아브넬의 죽음으로 이스보셋의 사울가는 급속하게 무너져갑니다. 이 몰락의 과정을 눈 여겨 보시기바랍니다.
1. 본문 분석
①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범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패배한 왕의 후궁은 대개 승리한 왕이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조의 군장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와 통간을 했습니다.
이것은 6절 말씀처럼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아서" 이스보셋의 왕권에 도전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②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꾸짖었습니다.
아무리 무기력하고 허수아비같은 군왕이라고 할지라도 이스보셋은 선왕(先王)인 아버지 사울의 후궁을 범한 아브넬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7절에 보면 "장군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였오?" 하고 따졌습니다. 왕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③ 아브넬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스보셋의 추궁에 아브넬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책임을 여자의 그릇된 행실에 돌릴 뿐 아니라 이스보셋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으로 몰아 부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첫째로, 이스보셋의 질책을 듣고서 되려 크게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아브넬은 분명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전승을 거둔 왕이나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을 신하인 자기가 누렸습니다.
이것은 이스보셋 같은 왕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를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하느냐며 하늘 높은 교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를 유다의 개 대강으로 아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쉽게 풀이하면 자신을 다윗의 유다에 빌붙어 사는 개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느냐는 독설인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흔히 하는 말이 "나를 손톱 밑의 때로 여기냐"며 따지는 태도인 것입니다.
셋째로, 자기가 이스보셋의 아버지인 사울가에 충성을 다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이스보셋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며 자기의 공로를 들먹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스보셋 정도는 다윗에게 넘겨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보셋 일가가 다윗가로 팔려가지 않고 이렇게 설 수 있게 된 것이 다 자기 은덕 때문인데
이것을 모르느냐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교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넷째로, 이스보셋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합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아브넬은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표준 새번역 개정판에서는 '이 여자의 그릇된 행실'이라고 번역했음--을
자기에게 돌린다고 이스보셋에게 반발합니다. 두 가지를 강조하는 것이지요.
아브넬은 먼저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한 것이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의 그릇된 행실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 다음에 이스보셋이 자신의 은공은 잊어버린 채 그 여자의 과실을 자기에 돌리며 누명을 씌운다는 것입니다.
참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④ 아브넬은 하나님께서 이스보셋에게까지 유전되어 온 사울가의 왕권을 다윗가로 옮기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간통 사건에 대한 추궁 하나가 이렇게 까지 확대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왕 정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공로 때문에 이스보셋이 이만큼이라도 되었는데 겨우 선왕의 첩 하나 정도 통간했기로서니
나를 이렇게 섭섭하게 대할 수 있느냐며 극도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 반발의 정점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를 버리시고 이스보셋으로 이어져 온 모든 왕권을 다윗가로 옮기실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⑤ 길길이 날뛰는 아브넬의 반발에 이스보셋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이스보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실권이 아브넬 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보셋 왕가의 몰락은 시간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하로부터 이와 같은 수모를 당하고서도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울 왕가의 완전한 붕괴를 그대로 예고해주는 것입니다.
2.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① 인간의 심성 밑바닥에는 배신의 본능이 숨쉬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 역시 반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아브넬의 경우가 이와 같은 원죄적 속성을 유감 없이 보여줍니다.
자신의 윤리적 흠에 대해서 질타를 당하자 마음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반역성이 고개를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게 되면 아브넬처럼 될 수 있음을 늘 경계하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손톱처럼, 머리카락처럼 자라나는 죄악의 못된 습성을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라내야 할 것입니다!
② 자신에 대한 과신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아브넬이 자신의 명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터뜨리며 모든 책임을 이스보셋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브넬의 하늘 모르는 자만심에 그 뿌리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넬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사람입니다.
이스보셋 왕권이 자기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에 찼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사헬이 자기 뒤를 쫓아 올 때 점잖게 타일렀던 것도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까닭에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심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으며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아브넬 없는 사울 왕가는 중심을 잃고 너무나 쉽게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아브넬은 사울 왕가를 떠받치고 있었던 중추였으며 실세 중에 실세였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넬의 귀순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 쪽으로 투항함으로서 다윗은 비로소 통일 왕국의 군왕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아브넬은 분명히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든 사람도, 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군사적 실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머리는 비어 있었으며, 인격도 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아브넬은 자기에 의하여 동생 아사헬을 잃어버린 요압 장군에 의하여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배신과 반역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강할 때 절대로 주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만할 때 주님은 저만치 떨어져 계십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해집니다(고후 12: 10).
내가 부족함을 절감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주님께서 역사 해주십니다.
아브넬과 같이 아만(我慢)에 가득찬 고집쟁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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