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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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47 조회7,0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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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 1-31>
Nearly forty years ago, one night around midnight, an older African American woman was standing on the side of an Alabama highway in a drenching rainstorm. Her car had broken down and she was soaking wet as she tried to flag down a car. To her surprise, a young white man stopped to help her, unheard of in those racially charged days. The man took her to safety, helped her get assistance and put her into a taxicab. She seemed to be in a big hurry, but wrote down the young white man's address and thanked him as she left.
Seven days went by. A knock came at his door. To his surprise, a giant console color television was delivered to his home. A special note was attached, which read, "Thank you so much for assisting me on the highway the other night. The rain drenched not only my clothes but my spirits. Then you came along. Because of you, I was able to make it to my dying husband's bedside just before he passed away. God bless you for helping me and unselfishly serving others. Sincerely, Mrs. Nat King Cole."
We never know when we will meet someone famous. Neither did one Samaritan woman! 요한 복음 4장에는 참 이상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는 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에 들어가서 이방인과 대화를 나누셨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보통 이방인들이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마리아인은 지금부터 약 2,722년 전에 앗수르(Assyria)제국에 의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뒤에 이스라엘 지역에 이주해온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유대민족과 같이 성전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리심산을 중심으로 한 종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대민족이 멸시했고 상종하지 않았던 민족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유대민족과 사마리아인들이 교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나의 엄격한 관습처럼 여겨졌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출입금지 구역이었던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그것도 남존여비가 심하던 시대에 남자가 아닌 여자,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케 하고 육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으로 관심을 바꾸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거듭났고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위대한 대화의 기술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대화와 말씀을 통하여 한 인간을 치료하시는 놀라운 주님의 능력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라고 하는 철학자는 "나와 너"(I and Thou)라는 책에서 인간의 만남과 대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나와 그것"(I and It)의 만남, 즉 비인격적이고 사물적인 만남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한다든지 잔디깎는 기계, lawn mower로 기계를 깎는다든지, 공책에다 글을 쓸 때 펜을 가진다든지 하는 관계, 즉 우리가 어떤 사물적이고 비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것은 모두 "나와 그것"(I and It)의 관계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나와 당신"(I and Thou)의 만남은 마음과 마음,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는 살아있는 만남과 대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그것"의 사물적인 만남에서는 "I'm O.K. But you're not O.K."로 흔히 끝나지만, "나와 당신"의 만남과 대화에서는 "I'm O.K. And you're also O.K." 대화가 끝나면 나와 상대방이 모두 흡족하고 happy하고 기쁨을 느끼는 만남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바로 이와 같은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과 대화"의 한 전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대화의 방법으로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매우 일상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유대 시간으로 제 6시, 즉 정오 12시에 예수님께서 피곤에 지쳐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계실 때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사는 한 여인이 물 길러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통 여자들이 우물가에 물 길러 오는 시간은 보통 이른 아침이거나 늦은 저녁 시간인데 이 여자는 햇빛이 쨍쨍 내리쪼이는 오후 12시에 야곱의 우물에 물 길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 앞에 떳떳치 못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바로 이 시간에 물을 길러 왔을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두 사람만이 현장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여자와 예수님께서 더욱 진지하게 솔직하게 참문제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다는 분위기와 여건이 마련되어 있음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9절에 사마리아 여인의 대답은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유대인으로서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목이 갈하여서 마시게 되는 "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육적인 물"에서 "영적인 생수"로 대화를 더 깊은 곳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왜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걸어옵니까?" 질문을 던지는 여자에게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바로 그이가 너에게 생수, living water를 주었을 것이다." 이 여자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11절에 "주여 여기는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수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육신의 목이 마르면 마시게 될 세상적인 물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12절에 말하기를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바로 이 우물에서 자기와 자기 자식들과 자기에게 속한 육축들이 다 물을 먹었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한 자입니까?" "야곱이와 그의 후손들이 마셨던 물보다 더 좋은 생명의 물을 주신다니 그렇다면 당신이 오히려 야곱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점점 더 이상하고 사마리아 여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그저 일시적인 갈증만 해소시켜 주고 목이 마르면 또 다시 마셔야 되는 물이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런 물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이 여인은 세상적인 물을 마시고 또 마셨지만 그 물은 자기의 근본적인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물이 정말로 있다면 얻어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대뜸 말하길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이렇게 매일처럼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 주님께 "그런 생수가 있다면 저에게도 주시옵소서!"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여자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육적인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적인 생수를 주시는 분인 것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꿉니다. 물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16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깜짝 놀라서 17절에 자기는 현재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18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그래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바로 이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자는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고백하길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제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선지자이며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제가 단순히 세상적인 물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한 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현재도 남편이 있지만 그 남편이 참 남편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물을 마시고 또 마셔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갈증과 허기만 더 심하여졌을 뿐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생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대화의 주제가 이제 "마시는 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에서 마침내 "예배"의 문제로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로, 20절에 사마리아 여인인 "우리 사마리아인들의 조상은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렸고 당신들 유대 민족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마땅합니까?" 이 여자는 이제 예수님과 바른 대화의 track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그 동안 너무도 삶에 지쳐 있었고 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참으로 만족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려서 새로운 삶을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23절과 24절에 요한 복음 4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이 말은 진정한 예배, 살아있는 예배는 어떤 장소나 신분이나 국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의 경건함과 진실에 달려 있는 것이지 어떤 외적인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True worship is not dependent upon the status or gender or nationality of the individual, but spirit and truth are the only ingredients involved in right worship of God.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영어로 illuminate, 즉 진리를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구세주가 되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며 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8절과 29절 말씀에 보니까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사실을 외쳤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줍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줍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육적인 허기와 갈증을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채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쾌락과 허영은 오직 우리에게 일시적인 만족과 위로를 줄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생수만이 우리를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게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과 대화한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참기쁨과 영생과 구원을 얻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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