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요한복음 강해(3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08 조회4,965회 댓글0건

본문

요한 복음 강해 (33): '생명의 떡'  

                  <요 6: 28―40>


 <본문 배경 분석>

 본문은 여전히 예수님과 무리들 사이에 일어난 대화의 일부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는 바다 반대편 가버나움으로 건너가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집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난주에 살펴 본 것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직답을 피하시고 "너희가 나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은 순전히 떡을 먹어서 배부르기 때문이다"라고 힐책 하셨습니다.  그런 뒤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27)고 충고하셨습니다. 

 

<오병이어를 체험한 무리들과 예수님의 대화, 세 가지 초점>
 이제 오늘 봉독한 말씀은 무리들이 바로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장면입니다.  본문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무리들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묻거나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28절에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권면했더니 무리들이 대뜸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대 무리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선행(善行)을 즉각적으로 떠올립니다.  유대인들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자비를 많이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흔히 그들은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착한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 그리고 이 중간에 끼인 사람들로 분류했습니다.  착하지도 않고 못되지도 않은, 중간에 속한 사람들은 다만 한 가지라도 선한 일을 행할 경우 착한 사람들이 속한 카테고리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무리들은 어떤 일을 해야지만 착한 사람들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선행의 리스트를 알려달라는 주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무리들은 예수님의 진짜 의도를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일들을 해야지만 그것이 선행이 되어서 선자(善者)들 그룹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주 압축적이고 핵심을 치는 말씀을 하십니다. 

 29절에 있는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뿐입니다.  선행과 자비를 아무리 많이 행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야말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들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30절에 보면, 예수님의 이와 같은 대답을 들은 무리들이 또 한 번 예수님의 말꼬리를 잡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주장하고 계신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진짜 메시아라고 한다면 당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서 증거를 대보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인 증거를 대보라고 요구를 하면서 무리들은 갑자기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언급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배불리 먹었던 떡과 물고기를 여태껏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쑥 만나에 대한 기적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먹었던 떡과 물고기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혹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만나'와 같은 표적을 보일 수 있느냐고 예수님을 살짝 떠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두 가지 요점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②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결코 아니며,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떡이 아니라 그 떡의 상징물에 불과하다.
 32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 만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린 참 생명의 떡이 아니다."  만나는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허기를 면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양식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실 진짜 떡, 생명의 떡의 일시적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육적인 만나는 그 옛날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만족만 주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짜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이와 같은 생명의 만나, 영생의 떡은 결단코 모세로부터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만나 사건의 주인공 모세와 은근슬쩍 비교하면서 확인 받으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못박으신 것입니다. 

 첫째로, 육적인 만나는 모세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따라서 영적인 만나 역시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올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육적인 만나는 참 생명의 떡이 아니라 이 떡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허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모세의 만나와는 매우 다른 생명의 만나, 생명의 떡을 언급하시자 사람들은 갑자기 그런 떡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4절에 보면 "주여 이런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면서 그런 떡을 먹고 싶다고 보챕니다. 

 사실, 하늘로부터 내려와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런 떡을 얻어먹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런 무리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본문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35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③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만나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잠시 동안만 육적인 허기를 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이 되게 하셔서 이 땅위에 보내 주셨는데 누구든지 저를 받아먹는 자는 근원적인 허기를 영원히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는 주장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루 세끼 혹은 두끼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이, 떡 혹은 밥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이 떡 혹은 밥이 되셔서 우리의 생명을 지속시켜주신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생명'이라 할 때 이것은 육적인 것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영혼과 정신이 깃들어 있을 때에만 살아있지 우리 영혼과 정신을 떠나서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게 하는 진짜 생명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우리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목적이 되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 진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생명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공허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떡은 어디서부터 옵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그 생명의 떡이라고 주장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죽음과 공허함에서부터 벗어나 생명과 충만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떡되신 예수님을 날마다 먹게 될 때 우리 영혼에 허기짐이 살아지고 진정한 만족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 견고하고 안전해집니다. 그 어떠한 풍파와 시련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하게 됩니다. 

 

 <결어>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위로 내려오셨지만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36).  그러나 주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자는 한 사람도 쫓지 않고 다 받아들이실 것입니다(37). 

 그리고 더 중요한 본문 말씀의 결론은 38-9절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 되셔서 우리 곁에 오신 것은 세상 끝 날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 진리를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생명의 떡을 풍성히 공급받으십시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