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

사무엘하 강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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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6:42 조회5,4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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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12): '수단과 방법도 중요합니다' <삼하 6: 1-11> 

 

 

2004년 9월 8일 새벽 기도회 설교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법궤를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사울왕 시대 동안 내내 사람들은 법궤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 잊혀진 법궤를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은 다윗 왕권이 철두철미 신정일치(神政一致)였음을 입증하는 단초가 됩니다.

 

 

 1. 본문 분석


 ① 다윗이 법궤를 옮겨온 것은 거족적인 일이었습니다. 


 법궤는 7-80년 동안 기럇여아림(가나안식 옛이름은 바알레유다)에 방치되었습니다(삼상 6: 21).

런데 다윗은 이 법궤를 각 지파를 대표하는 사람 3만 명을 뽑아서 그들과 함께 직접 그곳으로 갔습니다(1-2절).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로 하여금 수레를 몰도록 했습니다(3절).

 

 ② 다윗은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법궤를 운반하도록 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습니다(4-5절).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물인데(출 25: 22)

이 안에는 십계명 새긴 돌판(신 10: 4)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 17: 10), 만나 항아리(출 16: 33-34)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법궤는 언약궤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상징하기도 하고(출 25: 16, 21),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법궤는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계 11: 19).

 

 이렇게 귀한 법궤였으니 그 법궤를 모셔온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재주를 다해서 주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법궤를 운반했다는 일은 분명 축제 분위기였음을 보여줍니다.

 

 

 ③ 다윗은 법궤를 운반하는 율법의 규례를 지키지 않아서 웃사의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민 4: 15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는 함부로 다룰 수 없었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만이 운반할 수 있었으며 그것도 어깨에 메고 옮기되 법궤를 손으로 만질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어떻게 했습니까? 법궤를 수레에 실었습니다.

 

아효가 궤 앞에 걸어가고 웃사는 수레에 탄 채 궤 옆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들이 날뛰었습니다. 놀란 웃사가 법궤를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례를 무시한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로 웃사는 궤 옆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옮기려던 계획은 운반 방법상의 결례로 인하여 중단이 되고 말았으며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서 석 달 동안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2.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소들이 날뛰니 법궤가 흔들렸습니다. 놀란 웃사가 법궤를 붙들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다윗은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 법궤를 운반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고 동기가 좋아도 하나님은 그 방법과 수단까지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시한 채 인간적인 열심만 앞세우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다윗의 법궤 운반 제 1계획이 왜 좌절되었으며, 왜 선한 일을 하던 웃사가 갑자기 죽었던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목적도 중요하게 보시지만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거룩한 방법 역시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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