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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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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30 조회6,0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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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8):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방법'  

<요 1: 43―51>


 본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먼저 발견하시고 제자 삼으셨습니다.  이번에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해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관심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어떻게 전도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효과적인 전도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① 먼저 전도자 자신이 주님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 23: 19).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은 전도할 수 없습니다.  혹시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을 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예수께서 구주가 되심을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시자 마자 그를 즉시 제자 삼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빌립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마 10: 3; 막 3: 18; 눅 6: 14; 행 1: 13).  빌립은 예수님을 따른 후 영광스러운 12사도 중에 하나가 될 만큼 열성적인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먼저 자기 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한 체험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전도가 일어나기 위하여 전도자 자신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② 전도 대상에게 직접 찾아가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해야 합니다.  45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전도였습니다.  곧바로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했던 것이지요.  예수님을 구주로 체험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도임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들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먼저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나다나엘이 빌립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빌립이 나다나엘과 매우 가까운 친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하나인 바돌로매와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서 이름이 아니라 가족의 성(姓)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셨다'--God has given--는 뜻의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의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12제자 명단에서 항상 빌립의 이름 바로 다음에 바돌로매의 이름이 짝이 되어서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러한 추측은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마 10: 3; 막 3: 18; 눅 6: 14).  (물론, 오늘의 신약학계에서 나다나엘을 바돌로매와 동일시하는 견해는 많은 반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 6: 70에서 예수님이 12제자를 뽑으셨다는 사실은 언급하지만 그 명단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이 요한복음은 '바돌로매'라는 이름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고, 역으로 공관복음서는 '바돌로매'만 말할 뿐 '나다나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다나엘이 바돌로매와 동일한 인물로서 12사도 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하나의 개연성이 높은 추측일 뿐입니다.)

 조지 헌터(George Hunter) 3세는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가족 관계나 친구관계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일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가족/친지/친구의 관계 그물 안에서는 전도의 효력이 가장 빨리 나타난다는 주장입니다.  빌립은 평소에 잘 알고 지냈던 나다나엘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로 먼저 가까운 관계 그물부터 훑으셔서 전도의 문을 점차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뭐라고 전도했습니까?  45절에 보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메시아, 그리스도, 구세주를 자신이 만났다는 체험적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전도할 전부,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도에 있어서 본질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만남, 이것이 빠져서는 효과적인 전도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③ 시비를 걸어올 때 이를 슬기롭게 넘길 줄 알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전도해서 금방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장애에 부딪힙니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상례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하나 둘 열거하면서 예수 믿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대답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서 전도자의 기를 꺾으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친하면 친할수록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친한 동무에게 전도했더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혹은 태조 왕건이 예수 안 믿은 사람들인데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대답해 달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질문으로서 평신도가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전도 대상자가 시비를 걸어 올 때 여기에 말려 들어가서 안됩니다.  이 첫 번째 장애물을 지혜롭게 넘어서는가 못 넘어서는가에 따라서 전도의 성패는 좌우됩니다.      

 나다나엘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빌립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하자 대뜸 반박합니다.  46절에 보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면서 예수님의 출신 성분을 따지고 듭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으로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가나 사람입니다(요 21: 2).  가나와 나사렛은 바로 이웃 동네로서 묘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서로 시샘하는 동네들로서 지역감정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나사렛은 아주 작은 동네로서 별 볼일 없는 곳이었습니다.  구약 성경 어느 곳으로 보아도 메시아가 나사렛 동네에서 난다는 말은 없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사렛 같은 개천에서 어떻게 메시아 같은 용이 나올 수 있느냐고 반박한 것입니다. 

 이 때 빌립이 나다나엘의 냉소 섞인 대꾸를 듣고 여기에 말려들면 전도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과 더불어서 이에 대한 어떤 논쟁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딱 한 마디 했는데 그것이 뭔고 하니 "와 보라!"--Come & See!--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정말 메시아인지 아닌지는 직접 와서 그 분을 만나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인이 직접 만나봐서 맞닥뜨릴 때 예수님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를 잡듯이 오직 예수님께 직접 나아와 그 분을 만나 볼 때 그 분의 메시아성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만 듣고 예수님에 대한 체험이 없이는 절대로 예수님을 알 수 없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까다로운 질문을 받거나 냉소 섞인 반응을 들을 때 절대로 이에 말려들어서 안됩니다.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논쟁만으로 전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시 이지적으로 설득은 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걸 때 "Come & See!"를 외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④ 이렇게 전도자의 노력이 끝나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을 보세요.  빌립은 일단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하는 일까지만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저절로 해결해 주십니다.  전도자의 사명은 최선을 다해서 전도 대상을 예수님께 나아오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 후부터 일어날 일은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고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아가기도 전에 예수님은 그를 먼저 알고 계셨습니다.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가리켜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나를 어떻게 아셨다고 이런 말씀을 하실까?"  그래서 48절에 보면 나다나엘이 묻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셨나이까?"  주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너를 보았노라"고 대답하십니다.  무화과 나무는 높이가 15 피트 정도, 넓이가 25 피트 정도 되는 나무로서 평화를 상징합니다(왕상 4: 25; 미 4: 4).  무화과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을 크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안식을 취하거나 명상하거나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은 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앉아서 메시아가 빨리 오기를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빌립이 전도하기 전에 나다나엘이 어떤 인품의 사람인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그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해서 예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전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께 나아 온 이후의 모든 문제는 주님이 아셔서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49절입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 고백은 나다나엘에 대한 전도가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빌립의 말대로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을 직접 체험해보니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 되시고 이스라엘의 임금 되심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전도자가 되십시오.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까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빌립은 오만과 편견이 전혀 없는 참 이스라엘인 나다나엘을 전도해서 교회사에서 큰 일을 해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요 21: 2) 인도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도에 가서 많은 선교업적을 남기고 장렬하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되는 일입니다. 빌립에게서 효과적인 전도 방법을 배워서 열심히 전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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