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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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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41 조회5,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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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14): '바람은 불고 있다'  

 <요 3: 7―12>


 <배경 분석>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참으로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야지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유대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의 의원이요 바리새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선생을 자처하는 니고데모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을 바람이 하는 일과 같다고 비유하십니다.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분명히 불고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사역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람'과 '거듭남'의 관계를 한번 살펴봅시다.  
 

① 영어 'spirit,' 즉 '성령'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pneuma'인데 이 말은 '바람'(wind)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ruach' 역시 '성령'과 '바람'의 뜻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람의 속성이야말로 성령의 속성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을 니고데모에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니고데모야, 너는 분명히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지만 그 바람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를 거야.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인간을 분명히 거듭나게 하시지만 너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단다." 

 바람이 부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분명히 살아서 움직임으로서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 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 본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니고데모와 같이 땅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음식맛을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가 직접 맛보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성령의 역사도 오직 체험하는 사람만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②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 정말로 강조하시고 싶었던 한 가지는 '체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철학자들이 사변적으로 연구해서 이지적으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인격적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람의 현상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바람을 연구하는 자연 과학자들은 알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모릅니다.  바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바람이 부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부는 결과(effect)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 바로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는지 설명할 수 없어도 바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진리를 확증시켜 줍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일들이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없어도 분명히 작동하고 있음을 체험으로 압니다.  전문가가 아닌 한 라디오나 TV, 컴퓨터, 세탁기, 등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지금 우리 눈앞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한 인간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실 때 우리는 그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사람이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제의 깡패가 오늘의 천사가 되고 옛사람이 죽어져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납니다. 

 찬송가 405장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가사는 잔 뉴톤(John Newton)이 쓴 시입니다.  뉴톤이 거듭나기 전에 노예를 사고 파는 못돼 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뉴톤이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어떻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느냐?"  우리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능력으로 거듭났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술주정뱅이 한 사람이 거듭났습니다.  거듭나기 전에 늘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하고 행패를 부리던 사람이 멀쩡한 새사람이 되니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바보 취급합니다.  술친구들이 빈정거립니다.  "너는 예수가 물이 변해서 포도주 되게 했다는 기적을 믿니?  그 따위 기적들은 말이야 다 지어낸 이야기야."  그러자 거듭난 술주정뱅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집에서 예수님께서 맥주병(beer)이 변화되어서 가구(furniture)가 되게 하신 것, 나는 그것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어!"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압니다.  우리가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많이 아는 것, 분명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백과사전처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체험을 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우리를 치료할 때 우리는 해부학이나 신체 구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해도 치료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 몸이 말해주어서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상한 심령을 고치고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오늘도 체험해서 압니다.

 

③ 땅의 일을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의 일을 말해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성령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 니고데모를 점잖게 꾸짖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자처하는 네가 어떻게 이와 같은 거듭남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듣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아무리 설명해도 네가 알아듣겠느냐?"  천국 진리에 무지한 니고데모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무지가 있습니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좀 더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경우에는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일부러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하려고 해도 마음이 완고하고 폐쇄적이어서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니고데모가 두 가지 중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지 딱 잡아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합니다.  너무나 신비한 말씀이었기에 그 말씀의 핵심을 깨달을 능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깊이 생각해 보면 니고데모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실력과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려 한다는 인상도 풍깁니다. 

 신생(新生)에 대해서는 예수님 이전에 이미 에스겔 선지자가 충분히 가르쳤습니다.  에스겔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 31).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 26).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정통해 있었던 니고데모가 이와 같은 에스겔의 가르침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니고데모는 이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니고데모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고맙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저는 현재의 저에 대해서 전적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거듭나기 싫습니다." 

 변화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거듭남에 대해서 들어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변화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열정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을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의 신비한 말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결국 우리를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결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항상 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중생의 역사도 인간의 필설로 설명키 어렵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바람처럼 여러분 심령 위에 불어서 새롭게 거듭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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