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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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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0:49 조회6,5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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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22): '다른 사람의 수고로 거두는 추수'  

 <요 4: 35―38>


 <본문 배경>
 요 4장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한 여인과 대화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자기 동네로 돌아가서 예수께서 메시아 임을 증거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대화가 끝난 뒤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로 돌아가서 자기가 메시아를 만났다는 증거를 하는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두 가지 주제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요 4: 31―34과 4: 35―38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살펴 본 것처럼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음식을 권했을 때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추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역시 제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두 가지 대화는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제자들조차도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아주 신비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비한 양식에 대해서 말씀을 마치신 후 뜬금 없이 대화 주제를 추수로 바꾸십니다.  35절에 보면 갑자기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일까요? 

 그리고 연이어서 36―36절의 말씀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추수하는 사람은 품삯을 받으며,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그리하면 씨를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함께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옳다.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참 아리송한 말씀입니다.

 씨뿌리는 것과 추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 언뜻 전도와 관련된 말씀인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변화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시고 바로 이 사마리아에서의 대대적인 전도의 열매를 씨뿌리는 것과 추수로 비유하신 것은 아닐까요?  이제 이 말씀을 더 정확하게 해석해 보도록 합시다. 

 <심는 사람 따로 있고, 거두는 사람 따로 있는가?  씨뿌리는 수고는 남이 했는데 추수의 결실은 내가 한단 말인가?>  

 

 ① 예수님은 세상을 추수할 밭으로 이해하십니다.
 먼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끝난 뒤, 이 여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바로 다음에 이 말씀이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틀림없이 '영적 추수,' 즉 전도의 결실로서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더 확대하면 사마리아 성 전체가 추수해야 할 영적인 밭이요, 전도의 밭으로서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수가 성의 여인 하나가 사마리아에 엄청난 영적 추수를 가져 올 것임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35절에서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말씀은 그 당시 사마리아 땅의 실제적인 추수기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의 농사 상식을 되새기신 것뿐입니다.  유대인들은 농사 절기를 크게 6등분해서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씨뿌리는 시간,' 그 다음에 '겨울철,' '봄철,' 그리고 '추수철,' '여름철,'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로 흔히 나누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씨를 뿌린 다음에 추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략 4개월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 사람들은 씨뿌리고 열매를 거두려면 4개월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말하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는 지금 당장 눈을 들어서 저 사마리아 들판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다 익어서 거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추수가 바로 눈앞에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곡식 열매의 추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추수,' 즉 전도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마리아 한 가운데 위치해 있던 수가 성이 옥수수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위와 돌이 많은 사마리아 땅에서 황금 물결을 이루는 곡식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5절에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노라'고 외치십니다.  여기서 희어져 추수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물론, 그 상징적인 의미는 지금 막 열매를 거두기 직전에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작가이며 언론인인 몰톤(H. V. Morton)이라고 사람이 이 구절에 대한 흥미있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몰톤은 자신이 직접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 대화가 일어났던 야곱의 우물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우물 옆에 직접 앉아서 옛날 사마리아 지역의 마을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한 떼의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는데 모두 하얀 색깔의 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몰톤이 가만히 이 사람들을 지켜보니까 그들이 입은 흰옷과 땅, 그리고 하늘이 아름답게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 때 몰톤은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면서 "아, 예수님께서 밭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말씀은 바로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듣고 자기를 향하여 흰옷을 입은 채 몰려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의미하셨구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확실치는 않지만 본문 말씀의 전후문맥을 보건대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된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흰옷 입은 무리들을 가리키면서 영적 추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② 씨뿌리는 사람의 수고가 있었기에 누군가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언급하신 추수 때가 임박했다는 말씀은 영적 추수, 즉 전도의 열매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와 같은 추수 때에는 거두는 사람이 품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모으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영적 추수시기가 되면 당연히 추수를 거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께 상급을 받고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 추수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다함께 기쁨에 동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씨앗을 뿌리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생각을 했고, 열매를 거두는 것만이 기쁨과 축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 126: 5―6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통념과는 달리 씨를 뿌리는 자도 기쁨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자 역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적 추수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느라고 고생한 사람이나 그들의 희생 위에서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에게나 불문하고 다 좋은 일이며 다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진리를 더 분명히 하시기 위하여 격언까지 사용하십니다.  바로 37절의 말씀이지요.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복음의 씨앗을 열심히 뿌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수고 덕분에 복음의 열매를 열심히 거두게 되는 이치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 말씀의 근거 위에서 예수님은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보내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다.  수고는 남들이 하였는데, 너희는 그들의 수고의 결실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수고한 사람은 누굴까요?  아마도 사마리아 성에서 영적 추수를 거두게 될 때, 씨를 뿌리느라고 수고한 두 사람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수가 성 여인의 수고 때문에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수월하게 열매를 거두게 되었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야말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신 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뿌려 놓은 씨앗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 활발하게 복음추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이 사마리아 성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 왔습니다.  여러분, 행 8장에는 사마리아 전도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빌립이 그곳에서 많은 개종자를 얻었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 사도들과 베드로, 요한 까지도 빌립의 뒤를 이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고 또 성령까지 선물로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수가 성 여인이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았을 때 이와 같이 그 이후의 빌립과 사도들이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씨뿌리는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누군가가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사람이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귀하고 아름다운 사역자들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인 터툴리안(Tertulian)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결어: 그러므로 우리는 씨를 뿌릴 때와 거두어야 할 때를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씨를 뿌릴 때가 있는가 하면 거둘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씨를 뿌릴 때인가?  아니면 열매를 거둘 때인가?  잘 분별해서 시기에 맞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 배후에는 우리 선진들의 씨뿌리는 수고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어떤 씨앗이 열매를 거두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바심을 내어서는 안되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씨앗은 꽃이 피는데 무려 25년이 걸리는 꽃도 있다고 합니다.  80세에 이 꽃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이 씨앗이 꽃피는 것을 살아서 직접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씨앗이 자라나 아름답게 꽃피는 것을 지켜 볼 것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어떤 중국 대나무는 싹을 땅에 심으면 4-5년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가꾸어도 어떤 변화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5년쯤 지나면 갑자기 극적 변화가 일어나 불과 6주만에 90 피트(약 27 미터 정도)의 크기로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월드 북 백과사전(World Book Encyclopedia)에 따르면 어떤 대나무는 수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고 불과 24시간, 즉 하루만에 3피트(90 센티미터)가 자랄 수 있는 대나무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씨앗을 뿌려서 곧바로 열매를 얻는 경우도 있고, 또 수 십년 수 백년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누군가가 나중에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소망과 기쁨 중에 열매를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열매를 거둔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두 가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죄짓는 일과 전도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하시다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기왕이면 열심히 전도하다가 천국에 들어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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