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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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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11:36 조회5,5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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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강해 (44): '기회 지나가기 전에'  

         <요 8: 21-30>

 
 <너희가 죄 가운데서 죽겠고>

  본문 말씀은 지난 주에 말씀드린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관 복음서와는 다른, 요한 복음만의 고유한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본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디론가 떠나신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어디론가 가시게 될 것이 분명한데 유대인들은 죄 가운데서 그냥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며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2절에 보니까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自決)하려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자기들은 가지 못할 곳으로 간다고 하실 때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겨우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지옥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결,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음부의 세계로 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셔서 음부의 세계, 즉 지옥으로 가려는 것인가 하고 지레 짐작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시는 것으로 말씀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지옥으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불신으로 가득차 있었던 유대인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차이점>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그들 사이의 두 가지 차이점을 말씀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아래, 즉 이 세상으로부터 났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위, 즉 하늘로부터 나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인 유대인들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며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희랍어로 'KOSMOS'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천국과 정반대 되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변화하고 유한하고 무상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신 피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죄가 찾아와 피조물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아서 피조물이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을 창조주처럼 생각해서 절하고 경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단지 양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믿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의 차이를 말씀하신 후 24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죄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단절이 생겨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가시는 천국으로 갈 수 있지만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속해서 살다가 결국 죄로 인해서 죽게 될 것입니다. 

 

<'죄': 하나님이라는 과녁을 빗나간 화살들>
 

 '죄'는 희랍어로 'HAMARTIA'입니다.  'HAMARTIA'의 원 뜻은 화살을 과녁에 쏘았는데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입니다.  화살이 과녁 정 중앙에 가서 맞아야 되는데 빗나가듯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이 죄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해하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는데 사람들은 영접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과녁을 빗나가 자기 멋대로 불신앙 가운데 삽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천국이라는 과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본향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세상에 속하여 살다가 죄 때문에 세상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28절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인자를 든다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다음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일체가 당신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루어진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기회 지나가기 전에'>
 

그러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인간의 양심이나 이성에 호소해 볼 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하나도 그름이 없습니다.  전부다 지당한 말씀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이 좋은 기회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만과 완고함과 전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서 이 기회는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날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지만 다른 곳에서 열심히 찾다가 결국은 기회를 놓치고 죄악에 파묻혀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떤 기회는 몇 번이고 자주 돌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회는 일생 일대에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을 놓쳐버리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버스를 타려면 버스가 지나가기 전에 손을 들어야 합니다.  버스가 지나간 뒤에 손을 들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이 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때 여인숙 주인들은 돈에 눈이 멀어서 일생일대에 단 한번 주어질 기가 막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와 요셉에게 따뜻한 방 한 칸을 내어주어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라면!  아마 성경에도 기록되고 인류사에 오래 오래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기회 지나가기 전에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 세상은 신속하게 지나가기 때문에 기회는 우리의 형편을 보면서 마냥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 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주님 위하여 쓸 때가 있고, 우리의 물질을 주님 위하여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재능을 주님 위하여 쓸 때도 있습니다.  심령이 갈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할 때도 있고, 은혜를 함께 나누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 결단해야 합니다.  신속하게 포착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영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일 때에는 슬기로운 판단과 신속한 결정이 중요합니다.  

 사 49: 8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이 말씀을 바울은 고후 6: 2에서 이렇게 바꾸어 말합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러분은 은혜 받을 만한 때, 구원의 날이 주어질 때 즉시 포착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회가 주어졌어도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립니다.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잡지 못했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본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전혀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변명할 길이 있습니다.  예컨대 아무도 복음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예수의 이름을 모르고 죽었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 변명할 수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복음이 아직 미치지 못해서 예수님을 믿을래야 믿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자신의 마음이 완고하고 불신앙에 가득차서 그 기회를 의도적으로 배척했다고 한다면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기회를 의도적으로 버린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 16: 27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또한 고후 5: 10에서 바울 선생도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주님의 엄중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성경은 약속합니다.


 <결어>
 "너희는 세상에 속해 죄 가운데서 죽겠고."  참으로 비참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죄중에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죄중에 있다고 한다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주님을 속히 받아들이십시오!  거기에 생명과 구원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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