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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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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2-30 09:50 조회3,6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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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10)  

차별대우하지 말라
<야고보서 2: 1―7>


야고보서 1장에서는 믿음과 행함의 불가분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제 이와 같은 일반적인 원리가 2장부터는 구체적인 예에 하나 하나씩 적용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교회안에서 부한 자나 권세있는 자가 어떤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하여 경계합니다. 또한 교회안에서조차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안됩니다.
삼상 16장에 보면 사무엘이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서 기름 부을 자를 고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장과 용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따끔한 충고를 주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 7).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용모나 사회적 지위나 신분――가 아닌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My brothers and sisters, do you with your acts of favoritism(partiality) really believe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여기서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prosopolempsia)는 표현은 레 19: 15을 그대로 연상시킵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불편부당함, 즉 'prosopolempsia' 없이 재판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특혜를 베풀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이룬 인간적인 성취나 높음이 하나님의 판단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2: 11; 엡 6: 9; 골 3: 25).

2. 교회안에서 차별대우가 행해지는 것을 주의해야만 합니다.
본문 2―3절은 야고보서가 전해진 유대계 기독교 공동체, 즉 '회당'(synagoge) 안에서 어떤 편파적인 대우가 구체적으로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만일 예배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면 높은 자리에 앉게 합니다. 그러나 만일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뱅이가 들어 올 경우 좋지 않은 좌석에 앉게 하고 심지어 발등상 아래 앉으라고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부자나 권세자가 교회 밖이나 안에서 특별한 대접받은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야고보서가 이런 통상적인 사회 관례를 깨면서까지 주 예수 안에서 모든 이들의 평등을 외치는 것은 혁명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신분의 높고 낮음이 하나님의 심판 받는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며, 오직 내적 믿음과 외적 경건의 실천의 종합만이 중요하다는 부동의 확신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결국 4절에서 교회안에서의 차별대우가 교인들로 하여금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되게 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3. 가난한 자들을 괄시해서 안 되는 이유는 이들이 하늘 나라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5―6절에서 가난한자를 멸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명시합니다. 세상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천대받고 멸시당하지만 천국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 없고 힘없어서 세상에 아무 기댈 언덕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오히려 믿음에 부요하게 만드시고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다시 말해 육적으로는 가난해도 영적으로는 부자가 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마태 5: 3에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또한 누가 6: 20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6―7은 그 당시 부자들과 권세자들이 자행했던 못된 악습을 지적합니다. 세상의 부귀와 권력을 동원하여 힘없는 백성들을 흔히 압제하며 법정으로 자주 끌고가는 행패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들과 권세자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주 소송을 걸어서 법정을 자기 편리의 도구로 삼았습니다(암 8: 4-6 참조). 그래서 7절 말씀 그대로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모독하고 훼방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결론: 야고보서 기자는 세상 사람들이 차별대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교회안에서는 있을 수 없음을 역설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고 하나님의 가치기준을 따라 사는 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서는 높고 낮음, 부귀나 빈천의 구별이 있어서 안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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