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브솔 시내를 못 건넌 사람들 (2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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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25 조회3,5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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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0장은 시글락 약탈사건과 그 수습과정을 전한다. 다윗과 부하들이 멀리 군사작전을 다녀온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에 쳐들어와 불바다로 만들었다.
다윗의 두 아내는 물론이고 성안에 남아 있던 아녀자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갔다.
다윗은 즉각 600명의 부하를 인솔해서 아말렉 군대를 맹추격했다.
그런데 시글락에서 24㎞쯤 떨어진 브솔 시내까지는 잘 왔지만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명이 갑자기 나자빠졌다.
이들은 먼 전선에 원정을 다녀온 직후였고 처자식을 빼앗긴 초토화된 마을을 보았을 때 사기가 떨어져 완전히 탈진했다.
이에 다윗과 400용사만 브솔 시내를 건너 진격했다. 결국 아말렉 군대를 진멸했고 처자식과 약탈된 물건을 완전히 되찾았다. 수많은 양떼와 소떼까지 전리품으로 챙겼다.
승자독식은 갈등과 분열 조장
이제 참으로 중요한 대목은 대승 후에 찾아온 논공행상이다. 다윗과 400용사가 의기양양해서 브솔 시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낙오병 200명이 머쓱하고 씁쓰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처자식을 동료들이 되찾아오는 광경을 보았을 때 사내대장부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민망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400명 중 유독 계산이 빠른 자들이 급격한 여론몰이를 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22절)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브솔 시내에 잔류한 이들이 눈꼴사나웠다. 그래서 처자식만 돌려주고 노획한 전리품은 물론이고 되찾은 물건도 일절 주지 말자고 우겼다.
이때 다윗은 그 삐딱한 사람들을 점잖게 타이른다.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24절)
사실 죽음을 각오하고 참전한 이들이 뒤처진 이들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챙겨야만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고 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다윗은 낙오병 200명을 전우들의 물건을 대신 지켜준 사람들이라고 자존심을 세워주며 참전자나 낙오자나 똑같이 분배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승리의 원인이 400명이 아닌 하나님께 있으므로 누구도 공로의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인생의 낙오자들이 늘어난다. 신용불량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750만명에 이르렀고, 이들의 80% 이상이 저소득 서민계층이라고 한다.
한때 국가주도적 산업화가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면, 문민정부 역시 이른바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금융기업과 대출업자들의 폭리를 부추기면서 저소득 서민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이들은 이제 경제적 박탈감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지마저 무참히 꺾이고 있다.
수고한 동료에 따스한 눈길을
자신의 수고와 능력에 따라 가져가는 것은 자본주의적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냉혹한 승자독식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성공과 번영이 나의 수고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믿고,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이들을 무능한 낙오자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애쓰고 수고한 동료들로 보는 따스한 눈길이 필요하다.
인생유전이라고, 살다보면 내가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새해에는 정치, 경제, 종교 할 것 없이 브솔 시내를 건넌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다윗의 넓은 가슴으로 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패배자들을 좋아한다. 장애인, 외국인, 뚱뚱해서 놀림을 받는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도 춤을 추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페터 회)
다윗의 두 아내는 물론이고 성안에 남아 있던 아녀자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갔다.
다윗은 즉각 600명의 부하를 인솔해서 아말렉 군대를 맹추격했다.
그런데 시글락에서 24㎞쯤 떨어진 브솔 시내까지는 잘 왔지만 병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명이 갑자기 나자빠졌다.
이들은 먼 전선에 원정을 다녀온 직후였고 처자식을 빼앗긴 초토화된 마을을 보았을 때 사기가 떨어져 완전히 탈진했다.
이에 다윗과 400용사만 브솔 시내를 건너 진격했다. 결국 아말렉 군대를 진멸했고 처자식과 약탈된 물건을 완전히 되찾았다. 수많은 양떼와 소떼까지 전리품으로 챙겼다.
승자독식은 갈등과 분열 조장
이제 참으로 중요한 대목은 대승 후에 찾아온 논공행상이다. 다윗과 400용사가 의기양양해서 브솔 시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낙오병 200명이 머쓱하고 씁쓰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처자식을 동료들이 되찾아오는 광경을 보았을 때 사내대장부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민망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400명 중 유독 계산이 빠른 자들이 급격한 여론몰이를 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22절)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브솔 시내에 잔류한 이들이 눈꼴사나웠다. 그래서 처자식만 돌려주고 노획한 전리품은 물론이고 되찾은 물건도 일절 주지 말자고 우겼다.
이때 다윗은 그 삐딱한 사람들을 점잖게 타이른다.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24절)
사실 죽음을 각오하고 참전한 이들이 뒤처진 이들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챙겨야만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이고 공평해 보인다.
하지만 다윗은 낙오병 200명을 전우들의 물건을 대신 지켜준 사람들이라고 자존심을 세워주며 참전자나 낙오자나 똑같이 분배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승리의 원인이 400명이 아닌 하나님께 있으므로 누구도 공로의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인생의 낙오자들이 늘어난다. 신용불량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750만명에 이르렀고, 이들의 80% 이상이 저소득 서민계층이라고 한다.
한때 국가주도적 산업화가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면, 문민정부 역시 이른바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금융기업과 대출업자들의 폭리를 부추기면서 저소득 서민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이들은 이제 경제적 박탈감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지마저 무참히 꺾이고 있다.
수고한 동료에 따스한 눈길을
자신의 수고와 능력에 따라 가져가는 것은 자본주의적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냉혹한 승자독식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성공과 번영이 나의 수고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믿고,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이들을 무능한 낙오자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애쓰고 수고한 동료들로 보는 따스한 눈길이 필요하다.
인생유전이라고, 살다보면 내가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새해에는 정치, 경제, 종교 할 것 없이 브솔 시내를 건넌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다윗의 넓은 가슴으로 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패배자들을 좋아한다. 장애인, 외국인, 뚱뚱해서 놀림을 받는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도 춤을 추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페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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