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목적, 규칙 그리고 덕성 (201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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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37 조회3,9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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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윤리에는 뚜렷한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첫째, 목적론적 윤리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가 어떤 선을 가져오느냐에 관심을 둔다. 행동의 동기보다 결과에 치중하기에 결과론적 윤리라고도 한다. 행위의 옳고 그름이 결과의 좋고 나쁨에 의존한다고 보기에 목적만 선하면 수단
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나 실용주의, 극단적 경우 절대불변의 도덕규칙은 없고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판단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상황윤리로
까지 치달릴 수 있다. 목적론적 윤리의 입장을 취할 경우 이혼이나 낙태, 안락사, 인공수정, 자살, 사형제 등의 까다로운 문제에 신축성을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사형제가 흉악한 범죄를 억제해 다수 시민의 생명
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응보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등 결과만 좋으면 존치해야 한다고 본다.
목적과 과정 조화 이뤄야
둘째, 의무론적 윤리다. 행위의 목적이나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심성과 동기, 의무감을 강조한다.
시대나 상황이 변해도 여전히 지켜야 할 도덕규칙이 있으며 목적이나 결과가 가져올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무조건 옳은 정언명령이기에 낙태, 안락사, 자살 등을 반대한다.
사람의 생명은 하늘이 준 것이므로 국가가 이 천부권을 종식시킬 권리가 없다며 사형제 역시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셋째, 덕성론에 기초한 윤리다.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적도 중요하고, 선택과 실행을 위한 규칙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인격과 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목적론적 윤리에서는 행위의 결과가 초래할 선익(善益)이, 의무론적 윤리에서는 엄수해야 할 올바른 규칙이 관건이라면 덕성론에서는 그 목적을 실현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행위자의 인간됨이 훨씬 더 중요시
된다. 좋은 목적도 옳은 규칙도 이것을 추구하는 행위자가 쌓은 덕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사실 목적론적 윤리는 골치 아픈 딜레마를 비껴나갈 융통성은 있지만 시비(是非)와 무관한 편의주의로 치달릴 위험성이 있고, 의무론적 윤리는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시민정신을 고양하고 인권과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장점은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옹고집에 갇힐 수 있다. 그러기에 목적론적 윤리의 공리성을 내가 아닌 이웃 지향적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의무론적 윤리의 율법
주의적 경향성도 함께 극복하면서 좋으면서도 옳고, 구체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책임적 윤리를 구현하기 위해 절제, 용기, 신중, 정의, 겸손, 인내, 친절 등의 덕을 기르는 것이 긴요하다.
사람의 인간됨이 가장 중요
개인의 타고난 기질이나 가정환경, 교육배경에 따라 언제나 결과의 좋음만을 셈하는 목적론적 성향의 사람도, 늘 법과 원칙만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의무론적 성향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단장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금품수수와 향응시비가 그치지 않는 것은 수단의 옳고 그름보다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더 치중하는 목적론 지향적 인사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므로 법과 원칙을 서슬 시퍼렇게 지켜
내려는 의무론적 원칙주의자들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사사건건 “법이요!”만을 외치며 문구에 얽매여 의사진행을 어렵게 하고, 툭하면 교회내부의 문제를 사회법으로 끌고 가는 소송꾼들도 다수
의 안녕과 이익에 귀를 기울여 볼 법하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산적한 현안을 다루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는 의무론적 경향이 짙은데, 그것만 가지고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변화무쌍한 정치계의 난제들
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갈지 짐짓 의문이다.
첫째, 목적론적 윤리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가 어떤 선을 가져오느냐에 관심을 둔다. 행동의 동기보다 결과에 치중하기에 결과론적 윤리라고도 한다. 행위의 옳고 그름이 결과의 좋고 나쁨에 의존한다고 보기에 목적만 선하면 수단
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나 실용주의, 극단적 경우 절대불변의 도덕규칙은 없고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판단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상황윤리로
까지 치달릴 수 있다. 목적론적 윤리의 입장을 취할 경우 이혼이나 낙태, 안락사, 인공수정, 자살, 사형제 등의 까다로운 문제에 신축성을 보일 수 있다. 예컨대 사형제가 흉악한 범죄를 억제해 다수 시민의 생명
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응보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등 결과만 좋으면 존치해야 한다고 본다.
목적과 과정 조화 이뤄야
둘째, 의무론적 윤리다. 행위의 목적이나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심성과 동기, 의무감을 강조한다.
시대나 상황이 변해도 여전히 지켜야 할 도덕규칙이 있으며 목적이나 결과가 가져올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무조건 옳은 정언명령이기에 낙태, 안락사, 자살 등을 반대한다.
사람의 생명은 하늘이 준 것이므로 국가가 이 천부권을 종식시킬 권리가 없다며 사형제 역시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셋째, 덕성론에 기초한 윤리다.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적도 중요하고, 선택과 실행을 위한 규칙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인격과 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목적론적 윤리에서는 행위의 결과가 초래할 선익(善益)이, 의무론적 윤리에서는 엄수해야 할 올바른 규칙이 관건이라면 덕성론에서는 그 목적을 실현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행위자의 인간됨이 훨씬 더 중요시
된다. 좋은 목적도 옳은 규칙도 이것을 추구하는 행위자가 쌓은 덕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사실 목적론적 윤리는 골치 아픈 딜레마를 비껴나갈 융통성은 있지만 시비(是非)와 무관한 편의주의로 치달릴 위험성이 있고, 의무론적 윤리는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시민정신을 고양하고 인권과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장점은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옹고집에 갇힐 수 있다. 그러기에 목적론적 윤리의 공리성을 내가 아닌 이웃 지향적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의무론적 윤리의 율법
주의적 경향성도 함께 극복하면서 좋으면서도 옳고, 구체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책임적 윤리를 구현하기 위해 절제, 용기, 신중, 정의, 겸손, 인내, 친절 등의 덕을 기르는 것이 긴요하다.
사람의 인간됨이 가장 중요
개인의 타고난 기질이나 가정환경, 교육배경에 따라 언제나 결과의 좋음만을 셈하는 목적론적 성향의 사람도, 늘 법과 원칙만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의무론적 성향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단장 선거를 치를 때마다 금품수수와 향응시비가 그치지 않는 것은 수단의 옳고 그름보다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더 치중하는 목적론 지향적 인사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므로 법과 원칙을 서슬 시퍼렇게 지켜
내려는 의무론적 원칙주의자들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사사건건 “법이요!”만을 외치며 문구에 얽매여 의사진행을 어렵게 하고, 툭하면 교회내부의 문제를 사회법으로 끌고 가는 소송꾼들도 다수
의 안녕과 이익에 귀를 기울여 볼 법하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산적한 현안을 다루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는 의무론적 경향이 짙은데, 그것만 가지고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변화무쌍한 정치계의 난제들
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갈지 짐짓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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