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나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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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19 조회3,5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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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교수 밑에서 조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기말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가 기상천외했다. 사지선다형도, 논술형도 아니었다. 사진에 찍힌 발만 보고 새의 이름을 쓰라는 것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25마리의 새 이름을 모조리 알아맞히라는 문제였다.
교실 벽에다 25개의 새 사진을 쭉 걸어놓았는데 새의 전체 모양을 찍어놓은 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으로 발만 살짝 찍어놓은 것들이었다.
학생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풀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시험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을 교수가 붙들고 물었다. "자네는 시험은 안 보고 어디를 가나?"
"이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기권하고 저는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래, 이 시험이 기말 시험이라는 걸 모르는가? 포기할 경우 과락을 할 텐데 그래도 좋은가?" "좋습니다.
과락시키려면 한번 해보세요. 저는 이 따위 시험은 치를 수가 없습니다!"
학생이 교실 문을 박차고 나서는 순간 교수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 순간 학생은 갑자기 자기의 바짓단을 걷어올리고 신발을 벗은 채 발을 교수에게 내보였다.
"교수님, 제 발만 보시고 제 이름을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참 통쾌한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살다 보면 종종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있던 우리 교회는 큰 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건축비에 대한 압박을 받을 때마다 집문서를 바치고 아파트를 팔아 건축헌금을 했다는 전설에 귀가 솔
깃해진다. 나 역시 그런 주문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기 때문이다.
소위 목회에 성공했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여기저기 세미나를 열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대형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마는 교회의 가시적 성장을 영적인 능력과 믿음
의 척도로 매김하는 것은 너무나 지나치다. 필자도 목회 초년 시절 몇몇 세미나를 다녀봤지만 도전을 받고 혜안을 얻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기 쉬웠다.
모든 교회가 수천명의 신도가 다니는 대형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공부에 소질이 없는 자녀에게 일류대에 들어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이 지나친 바람이 목회에도 너무 많다.
발이 찍힌 사진만 보고 25마리의 새 이름을 댈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한 마리도 아닌, 25마리의 새 이름을 모조리 알아맞히라는 문제였다.
교실 벽에다 25개의 새 사진을 쭉 걸어놓았는데 새의 전체 모양을 찍어놓은 컬러 사진이 아니라 흑백으로 발만 살짝 찍어놓은 것들이었다.
학생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풀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시험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생을 교수가 붙들고 물었다. "자네는 시험은 안 보고 어디를 가나?"
"이 문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기권하고 저는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래, 이 시험이 기말 시험이라는 걸 모르는가? 포기할 경우 과락을 할 텐데 그래도 좋은가?" "좋습니다.
과락시키려면 한번 해보세요. 저는 이 따위 시험은 치를 수가 없습니다!"
학생이 교실 문을 박차고 나서는 순간 교수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 순간 학생은 갑자기 자기의 바짓단을 걷어올리고 신발을 벗은 채 발을 교수에게 내보였다.
"교수님, 제 발만 보시고 제 이름을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참 통쾌한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살다 보면 종종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 있던 우리 교회는 큰 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건축비에 대한 압박을 받을 때마다 집문서를 바치고 아파트를 팔아 건축헌금을 했다는 전설에 귀가 솔
깃해진다. 나 역시 그런 주문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기 때문이다.
소위 목회에 성공했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여기저기 세미나를 열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대형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마는 교회의 가시적 성장을 영적인 능력과 믿음
의 척도로 매김하는 것은 너무나 지나치다. 필자도 목회 초년 시절 몇몇 세미나를 다녀봤지만 도전을 받고 혜안을 얻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기 쉬웠다.
모든 교회가 수천명의 신도가 다니는 대형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공부에 소질이 없는 자녀에게 일류대에 들어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이 지나친 바람이 목회에도 너무 많다.
발이 찍힌 사진만 보고 25마리의 새 이름을 댈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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