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어린애처럼 되지 않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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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0 21:41 조회3,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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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의 마지막 필체를 본 적이 있다. 봉은사에 걸린 현판 ‘板殿’(판전)이라는 글씨다. 71세 때 병중에 쓴 작품이다. 추사는 이 글씨를 쓰고 난 사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의 서체라고 믿기 어렵다. 치졸해 보일 정도다. 영락없는 어린애 글씨인 것이다. 글자 하나가 어린애 몸통만한 큰 글씨를 꼭 어린애가 쓰듯이 썼다.

신필(神筆) 김정희도 죽기 전 어린애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닐까.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한다. 어린이도 언젠가 어른이 될 날이 오기에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마 어린이의 해맑은 동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맞을 것 같다. 워즈워드는 무지개를 보고서도 감동할 줄 모른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을 조금씩 잃어간다. 잘 웃지 않고 엄숙해진다.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스스로를 꾸민다. 오만 가지 상념으로 가득 차 마음이

복잡해진다. 탐욕과 경쟁심이 그칠 날이 없다. 그리하여 일곱 빛깔의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서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이렇게 복잡하게 늙어가는 어른이 어린이의 단순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 셈이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이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왔다. 첫돌을 맞을 때 유명한 랍비에게 데려가 축복을 받는 관습 때문이었다. 제자들이 나무랐다. 스승을 먼저 생각해서 엄마와 아기들이

예수님을 귀찮게 굴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6-17).



 어린애처럼 되라는 말은 정직 순수 겸손 순종과 같은 어린애의 성품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어린애의 성품이 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천국은 성품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더욱이 여기서 말하는

어린이는 한두 살 먹은 갓난아기들이므로 어떤 인격적인 특질을 적용하기 어렵다.



  주님은 아기들의 수동성과 의존성을 염두에 두신다. 자신의 결단이나 노력, 성취와 상관없이 부모에게 철저히 기대 있는 아기들의 절대 의존성을 보신 것이다. 천국은 자신의 공로나 성취를 앞세우는

어른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엄마에게 붙어있는 아기들이 들어간다.



천국은 어린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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