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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칼럼 바이블 시론- 왕따가 왕자가 되는 세상(201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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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11 조회2,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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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멀다하고 왕따가 빚어낸 비보(悲報)가 들려온다.

생때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극단적 선택이다.

성적이 너무 좋아도, 너무 나빠도 따돌린다. 너무 잘나도, 못나도 문제다. 너무 착해도, 너무 튀어도 그냥 두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나와 다르고, 누군가 힘 있는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정상(正常)’의 기준에 어긋나면 무조건 밀어낸다. 장난으로 시작된 따돌림이 이내 점점 더 흉포해져 폭력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해외이주 여성들에 대한 왕따도 심각하다. 특히 가정 안에서 차별과 멸시, 구타, 심지어 살인까지 종종 일어난다.

남편의 폭력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여성,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임신한 몸으로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떨어져 죽은 여성,

심지어 보험금을 타내려는 남편에 의해 살해된 이주여성도 있다.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온 여성들을 깔보는 왕따 문화가 불러온 비극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37%에 달한다는 조사보고가 있다.

발음과 생김새가 좀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거나, 이름 대신 국명을 부르며 너희 나라에 돌아가라는 폭언을 듣기도 한다.

심지어 왕따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10대 다문화 가정 자녀가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연쇄방화를 저지른 적도 있다.

부강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친절하다가도 빈국에서 온 약자에게는 고압적인 자세로 딱딱거리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왕따로 탈북자 학생들이 자주 전학을 간다. 그 밖에도 장애우에 대한 차별, 전과기록을 가진 이들에 대한 편견, 또한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을 따돌리는 지역감정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악습이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처럼 왕따가 하나의 문화로 만연된 나라도 드물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각종 규례를 만들어 조직적인 왕따를 합법화했다. 예컨대 나병이나 유출병 환자들, 혹은 주검에 닿으면 거룩함이 손상된다고 여겨 일체의 접촉을 금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흐름을 뒤집어 놓으셨다. ‘정함’→‘부정함’→‘부정함’이 ‘정함’→‘부정함’→‘정함’이 되게 하셨다.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셨다.

혈루증 앓는 여인은 살짝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졌는데도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 주검이 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손을 잡고 일으켜 살리셨다. 예수님이 터치한 사람은 누구든지 깨끗해졌다.



예수님은 왕따로 이골이 난 세리와 창기의 친구가 되셨고 기꺼이 식탁교제를 나누셨다.

모든 유대인들이 따돌리던 면허증 가진 강도요, 매국노였던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를 품으셨다. 왕따가 왕자가 되게 하셨다!

성(性)과 계층과 인종과 정치 이념을 떠나 모든 사람을 왕따가 아닌 왕자로 대하게 하셨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면 나 역시 그로부터 소외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므로 내가 놓는 왕따는 거꾸로 그에 의해서 내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된다.

결국 왕따를 당하는 그나 왕따를 놓는 나 역시 함께 죽어간다. 나와 다른 견해나 개성, 다른 생김새를 가진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오늘날 무수한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이들은 내가 “나뿐인” 나쁜 놈이 되지 않고 참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다.

왕따가 왕자가 되는 세상, 예수님이 그토록 숙망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까. “내가 가장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사랑. 나는 그 사랑만큼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도로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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