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바이블시론- 망언(妄言)=망언(亡言) (201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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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36 조회9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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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4)


요즈음 망언을 릴레이로 쏟아내고 있는 일본 극우분자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성구다.

망언은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 소리인데, 유신회 소속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망언은 도무지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도 못하는 침략자의 자기변명이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많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일본군위안부로 착취한 사실을 왜곡했다.

이것도 모자라 2차 대전 때 미국군과 영국군, 심지어 월남전과 한국전도 전시 매춘제도를 용인했다는 망발을 했다. 그러기에 그런 일로 일본만 비난받을 수 없다는 궤변이다.



하시모토 망언의 극치는 일본 주둔 미군에게 일본의 성매매업소를 활용하라는 주문이었다.

참으로 미군과 일본 여성을 모욕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유신회의 또 다른 의원은 이에 질세라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득실득실하다”는 국가 모독적 실언을 늘어놓다가 제명당하기까지 했다.

어떤 미국 정치인이 논평한 것처럼 다 “역겹고 혐오스러운” 망발들이다. 이런 부류의 극우 인사들의 망언은 결국 일본의 외교력을 약화시키고 국익을 손상시키는 망언(亡言)으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침략자의 자기변명 불과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말을 한다. 모든 학문이 인간의 언어 사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반해 유독 야고보서만 부정적이다.

혀를 제대로 길들여 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탄식한다.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약 3:8).

사자나 곰과 같이 사나운 짐승들을 자유자재로 길들여온 인간이 정작 혀 하나를 다스릴 수 없다. 재갈은 말이나 거대한 전차를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고, 키 하나를 조종하여 엄청난 배를 마음대로 끌고 다닌다.

 이와 같이 혀도 세 치에 지나지 않지만 성냥개비 하나가 산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듯이 우리의 인생 전체를 불사를 수 있는 괴력을 소유한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고,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

매를 맺을 수 없음에도 한 입에서 상반된 말이 튀어나오니(一口二言),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말 속에는 한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정치인들의 망언과 폭언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돌출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본심이 자연스레 드러날 뿐이다. 그러기에 평소의 인격과 속마음이 바로 될 때에만 바른 말이 나올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왜 저렇게 망언을 연달아 남발하고 있을까? 그만큼 인격적 소양이 천박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일본 사회가 자신감을 잃고 피폐해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마치 독일의 민족적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을 때 나치가 득세해 유대민족을 함부로 깔보고 억압했던 것처럼, 정치적 망언의 배후에는 묘한 사회적 열패감이 숨어있다.



일본사회 피폐해진다는 방증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 언어를 쓰는 사람은 부실한 자재로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긍정적이고 건설적 언어를 쓰는 사람은 좋은 자재로 튼실한 집을 짓는 이와 같다.

공인은 물론 우리 모두가 날마다 쓰는 말이 날림공사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악천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집을 짓게도 한다.



“남의 손을 씻다 보면 내 손도 따라 깨끗해지고 남의 귀를 즐겁게 해주다 보면 내 귀도 따라 즐거워진다.”(구티에레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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