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바이블시론- 느헤미야와 함께 성벽에 서서 (201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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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38 조회1,6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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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여년 전 유다 총독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봉헌식을 특이하게 기획했다.

100년이 걸려도 엄두를 못 냈던 성벽 재건을 불과 52일 만에 해냈는데, 바로 그 성벽 위에 올라가서 봉헌식을 했다.

제사장 에스라가 이끄는 절반의 유다 백성은 성벽 위 오른쪽으로, 총독 느헤미야가 이끄는 나머지 절반은 왼쪽으로 돌아 정확히 예루살렘 성전에서 합류했다.



왜 성벽 꼭대기에 섰을까? 토목공사에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었을 때 원수들의 방해공작은 집요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심지어 여우 한 마리만 올라가도 성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지금 유다 백성 전부가 올라가도 성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성벽 꼭대기에 서서 원수들의 콧대를 낮추려고 했던 것이다.



늠름함으로 천하를 관조하다



 민족사의 맥이 영영 끊어질 뻔했고 한때 성도(聖都)였던 예루살렘이 잡풀만 우거진 폐도(廢都)로 방치됐다가 바야흐로 인구 재배치를 끝내고 곳곳에 활기찬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을 내려다 봤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다. 밖으로 원수들의 회유와 협박을 차례로 물리쳐야만 했고 안으로 관료들과 부자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해야만 했다. 한참 공사를 서두르고 있었을 때 부유층의 고리대금으로 신음

하는 빈자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쳤다. 촌각을 다투는 공사였지만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제아무리 튼실한 성벽을 쌓아도 다시 무너질 것을 알았기에 우선 일대 개혁부터 단행했다.



만리장성이 완공된 후 1세기 동안 꼭 세 번 뚫렸는데 모두 적들이 문지기들을 매수해서 뚫렸다고 한다.

그래서 황현 선생도 ‘매천야록’에서 “국가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해친 연후에 남이 치고 들어온다(國必自伐而後人伐之)”라고 탄식하며 망국의 일차적인 책임이 내부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던 지배층도 느헤미야의 솔선수범에 백기투항을 했다. 총독생활 12년 동안 자신은 물론 친척들까지 녹을 먹지 않았고, 새 예루살렘 건설이 활발해짐으로써 땅값이 폭등

했지만 땅 투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결기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자 마침내 빈자들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살찌우는 오랜 관행에 길들여져 온 부유층도 순순히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느헤미야의 눈부신 지도력은 최단기간에 성벽 중수 작업을 완료했다는 사실이 아닌, 새 예루살렘에 거주할 시민들의 영적·도덕적인 재무장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는 사실에 있다.

어제 광복 68주년을 맞으며 모두들 성벽 꼭대기에 서보는 체험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채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던 이 민족이 뜻밖에 광복을 맞았지만 이내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허리가 두 동강 났고, 결국 전쟁으로 나라 전체는 잿더미가 됐다.



城 재건에 앞서 개혁부터 추진



 전후(戰後)에 영국의 어떤 신문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길 바라는 것과 같다”고 혹평했지만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의 동시에 이루어냈다.

8월 15일, 성벽 꼭대기에 서서 찬란한 발전을 이룬 세상을 내려다 볼 때 느헤미야와 같은 뭉클한 감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최근의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참회하지 않고 우경화, 군국주의화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일본은 어쩌면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림으로써 다른 이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

는 수단을 빼앗아버리는’, 경제학자 리스트(F List)가 말한 ‘사다리 걷어차기’를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자기보다 한 수 밑에 있는 피식민지로만 보아왔던 한국이 어느새 버거운 상대가 되자 이제는 자기가 타고 올라왔던 사다리를 걷어차서 우리를 경계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때 유독 성벽 꼭대기에 올라가 천하를 관조하는 느헤미야의 늠름함과 형형한 두 눈빛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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