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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김흥규] 대문과 구렁텅이 (2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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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6:38 조회1,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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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하다 보니 다양한 계층들을 만나게 된다. 날이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일전에 어떤 연구원에서 조사한 계층 이동에 대한 인식 결과를 읽고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국민들 넷 중 세 명은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활비 부담의 증가와 기회 불공평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소득감소는 교육과 부, 지위와 명예까지 대물림하도록 양극화 사회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2011년에 한국의 부유층 1%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몫이 11.5%나 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나기’가 사회경제 구조상 지난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격차사회로 계층간 장벽 심화



 이러한 격차사회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문제점은 끼리끼리 모이는 계층 간의 두터운 장벽이다.

경제나 교육, 신분이나 지위, 거주지역,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 따라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모이는 군집현상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편리한 대로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기에 참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예컨대, 교회에서도 부자들과 지식인들은 그들끼리 모인다. 저소득층은 또 그들끼리 자연스레 무리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은연중에 생긴 분화가 아예 콘크리트 장벽으로 고착되어 양쪽이 오갈 수 없는 계급사회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계층 상승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조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준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의 비유’가 나온다. 두 사람에게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기막힌 대조가 반복된다.

안에 사는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

밖에 사는 거지는 아무 옷도 걸치지 못해서 피부병에 걸려 들개가 몰려와 헌데를 핥아대도 쫓아낼 기력조차 없다.

부자는 연일 잔치를 벌여 최고급 산해진미를 즐겼다. 거지는 부잣집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다.

부자는 큰 대문이 달린 호화저택에 살았지만, 거지는 집도 절도 없어서 다리 밑이나 산속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생전에 부자와 거지를 갈라놓은 것은 대문이었다.



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가놓을 경우 밖에 있는 이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잣집 대문 밖에는 지독하게 불행한 거지가 있었지만 거지는 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문을 열 수 있는 자유와 권세를 가진 부자가 무심한 나머지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는 거지에 문 열어젖혀야



 두 사람이 죽자 운명이 180도 역전되었다.

부자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지옥으로, 거지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생수가 흐르는 천국으로 들어갔다.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한 부자가 자기 쪽으로 거지가 건너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목을 축이게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생전에 거지가 부잣집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로 곯은 배를 채우려고 했는데, 이제 사후에는 거꾸로 부자가 거지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로 타는 목을 축이려고 했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추상과도 같았다.

부자와 거지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가로막혀서 양쪽으로 오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은 구렁텅이는 이미 생전에 대문으로 너무도 다른 두 계층을 철저히 분리시켰다가 사후에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온 것이었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를 오갈 때마다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실감한다.

죽은 후에 구렁텅이 앞에서 절망하지 않으려면 큰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이들이 먼저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아니, 우리 교회부터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누구든지 어울릴 수 있는 대문 없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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