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총화

파우스투스의 허언(虛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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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1-21 14:21 조회2,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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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악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마니교에 빠져 장장 9년을 허우적거렸다. 그가 마니교를 떠난 계기는 이 사교의 감독 파우스투스와의 만남이었다. 마니교 내부에서 독보적인 권위

와 지성을 갖춘 지도자로서 각광을 받던 파우스투스는 특히 언변이 탁월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소문에 듣던 대로 입담이 대단했다. 하지만 더 깊은 대화 속에 들어갈수록 그 말의 내용은

별로 건질 것이 없는, 공허 그 자체였다. 파우스투스는 인문학적 소양이 일천했으나 천부적인 말재주와 날마다 되풀이해서 강연을 하다 보니 숙달된 경험을 통해 대중을 휘어잡는 연사가 될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허위와 신화로 가득 찬 파우스투스의 말을 꼬집는다. "멋지게 차려입은 사환이 값비싼 빈 술잔만을 나에게 준들 어찌 내 갈등이 해소될 수 있겠습니까?…그러므로 그러한 말들이 더 잘 표현

되었다고 해서 더 나은 것이 아니요, 웅변적이라고 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매력적이고, 그 언어가 유창하다고 해서 그의 영혼이 지혜로운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

다. 따라서 파우스투스에 대하여 나에게 이렇듯 기대감을 갖게 해준 그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좋은 판단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재미있는 말만 듣고 그를 지혜롭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파우스투스의 허언에 단단히 실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의 내용을 음식으로, 그 형식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데까지 이른다. 말의 내용과 형식이 다 좋을 경우, 좋은 음식을 좋은 그릇에 담는 것과 같아서 금상

첨화이다. 반면에 내용과 형식이 다 별로일 때, 나쁜 음식을 나쁜 그릇에 담듯이 최악이다. 문제는 좋은 음식을 나쁜 그릇에 담듯이 내용은 나무랄 데 없지만 형식이 부족할 수 있으며, 나쁜 음식을 좋은 그릇에

담듯이 내용이 모자라도 말의 형식은 화려하고 세련될 수 있다. 설교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전자가 후자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파우스투스의 경우에는 후자라는데 아우구스티누스의 배신감은 뼈

저린 것이었다.


 타고난 재간과 단련된 웅변술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설교가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의 형식도 그렇거니와 그 내용이 부실하다는 데 있다. 아무개가 굉장한 설교가요 부흥사라

고 칭찬이 자자해서 들어보면 속빈 강정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 배꼽이 빠지도록 재미있고 사자후를 토해 사람들을 홀리지만 왠지 고개를 가로저을 때가 있다. 세간의 소문과 평판만으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속는가! 풍요한 지성과 비상한 예지를 지녔던 아우구스티누스를 마니교로부터 떠나게 한 파우스투스의 망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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